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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天然コケッコー,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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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그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터만 놓고 봤을 때에는 제 경우 보러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부류의 영화입니다. 연소자관람가 영화에 대한 무슨 편견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이 영화는 제목부터가 너무 청정원료스러운 데다가(18세 이상 관람가에 <뒷골목에 부는 돌개바람> 정도라면 흥미를 가질만 하죠) 알록달록한 튜브 하나씩 들고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건 아무래도 내가 볼 영화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더군요. 그럼에도 이 영화의 관람을 결심하게 된 건 순전히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본 건 <린다 린다 린다>(2005)와 <마츠가네 난사사건>(2006), 단 두 편이 전부이지만 신뢰도 100%의 영화 감독1 한 사람을 추가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포스터에서 예상되는 분위기와 전혀 다른 영화일 가능성조차 없어 보였습니다만 그래도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면 최소한 영화를 보는 중에 이걸 왜 내가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 일은 없을 거라 믿었습니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과 함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과 <메종 드 히미코>(2005)의 시나리오를 쓴 와타나베 아야가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죠. <메종 드 히미코>는 와타나베 아야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였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타나베 세이코의 단편을 각색한 작품이었습니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도 순정 만화가인 쿠라모치 후사코의 원작 <천연 꼬꼬댁>(제 20회 고단샤 만화상 수상작)을 각색한 작품이더군요. 그런 점에서 와타나베 아야가 각본에 참여했던 작품들까지 언급되고 있는 건 그리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라면 그의 전작들을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과 연관지어 언급할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소재와 스타일 면에서 특히 <린다 린다 린다>의 연장선 상에 놓인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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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모두 합쳐 6명이 전부인 조그마한 산골 마을이 배경입니다. 이곳에 중학교 2학년 남학생(오카다 마사키)이 전학을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포스터에는 모두 7명의 아이들이 보이지만 그 가운데 중학교 2학년 소녀(카호)가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의 실질적인 주인공입니다.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의 일상과 감정을 따라가기 보다는 주인공 소녀 한 사람의 감정과 성장해가는 모습을 세밀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을의 어른들과 다른 아이들의 모습은 대체로 주인공 소녀의 시각에서 비춰집니다. 과거에 연인 사이였다가 사이가 틀어진 이후 다시 만나게 되는 소녀의 아버지(사토 코이치)와 소년의 어머니 간의 관계도 소녀의 시각에서 목격되고 어림짐작만 하고 넘어가는 식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관계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소녀의 반응입니다.

순정만화 원작인데다가 중학생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이와이 슌지 감독의 뽀사시한 비주얼2이나 아웃사이더로서의 감성3과 는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대단한 비주얼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요 내러티브 전체를 아우르는 특별한 갈등 구조를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이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흡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내공이라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3학년 졸업과 고등학교 진학 시기에 이르러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될 뻔(?) 했던 정도가 주인공 소녀와 소년의 감정을 증폭시켜주는 계기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이런 우여곡절 마저도 그다지 크게 부각시키고 있지는 않습니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린다 린다 린다>와 마찬가지로 사춘기 소년 소녀의 사랑 보다는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시공간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소년과의 졸업 기념 키스에는 아직 "사랑이 없다"지만 홀로 남겨진 소녀가 학교 칠판에 입을 맞출 때에 그 사랑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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