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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로드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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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작가인 코맥 맥카시의 작품인 '로드'는 세상이 불타버리고 탄 냄새가 진동하는 현실 속에서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나는 부자(父子)의 여정을 서술하고 있다. '로드'는 의문의 대재앙이 어떻게 해서 발생했는지에 대해 순차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부자의 여정 속에서 남자의 회상을 통해 대재앙에 대한 인상을 독자들에게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황폐화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의 일과를 묘사하면서 인물의 내면 심리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나는 전설이다'의 로버트 네빌에 비하면 '로드'의 부자는 더욱 힘든 환경 속에서 생존의 가시밭길을 걷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로버트 네빌은 비록 밤이 되면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생하지만 낮에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황폐화된 식료품 가게에 들러 식량을 챙길 수 있는데 반해 '로드'의 부자는 남쪽을 향해 길을 걸으면서 식량을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방랑자들이 먼저 약탈해 간 덕분에 부자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폐허가 된 집들을 뒤져가며 남아있는 과일이나 통조림을 찾아야 한다.

식량을 찾아다니는 과정 속에서 부자가 경계하는 가장 무서운 존재는 다름아닌 사람이다.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의 식량을 약탈하고 심지어는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 인간들의 잔인성을 텍스트를 통해 목격하는 과정은 끔찍하면서도 탄식이 절로 나온다. 남자는 비상식량과 담요 등을 담은 카트를 움직이면서 자신들과 같은 인간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 경계를 세운다. '나는 전설이다'의 로버트 네빌의 경우 홀로 살아가면서 자신과 같은 생명체를 만나길 기대했지만 '로드'속의 주인공인 남자에게 인간은 자신들의 식량을 빼앗아 가고 심지어 부자의 목숨을 해칠 수 있는 적과 같은 존재와도 같다. 두 발 밖에 남지 않은 총알이 든 총을 든 남자가 인간을 경계하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은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인간들의 긴장감이 묻어난다.

식량을 찾아다니는 과정 속에서 부자는 인간을 향한 관점 차이로 인해 대립하기도 한다. 대재앙 속에서 인간들의 잔인함을 목격한 아버지는 노인처럼 힘없는 자도 경계하지만 대재앙 후 태어난 아이는 인간의 잔인성을 여러 번 목격하지만 인간에 대한 친절함을 잊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은 대립한 후 서로 말을 하지 않으며 냉랭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다시 길을 떠나면서 불편한 감정을 잊으며 방랑길을 떠난다. 죽어 있는 인간들이 행운일지도 모른다고 독백하는 남자가 그토록 생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바로 자신의 소중한 자신인 아들 때문 일지도 모른다.


ps. '로드'는 여러 면에서 인상적인 장르소설이기는 하지만 '성서에 비견되었다'는 문구는 글쎄라는 생각이 든다.

ps2. '로드'는 현재 영화로 제작 중인데 imdb.com에 의하면 2008년 11월 말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배우들을 살펴보니 아버지 역에 비고 모텐슨, 그의 부인 역에 샤를리즈 테론이 캐스팅 되었다. 원작에서 부인은 남자의 회상에 몇 번 등장하는 정도로 극히 낮은 비중인데 부인 역에 샤를리즈 테론이 캐스팅된 점을 보면 원작과는 다르게 부인의 역할이 커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