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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샤인 어 라이트 (Shine A Light,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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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대사를 해야 할 부분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영화 장르를 '뮤지컬 영화'라 한다면 뮤지컬 영화를 포함하여 음악적인 요소가 아주 많거나 아예 작품의 중심이 되는 영화들은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모두 '음악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전기물이나 픽션이 아무래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테고요 그외에도 드라마가 매우 강하면서 음악을 두드러지게 사용한 작품들도 있겠습니다. 음악이 중심이 되면서도 '음악 영화'라고 부르기 곤란한 영상물은 대표적으로 뮤직비디오와 콘서트 실황이 있습니다. 특히 콘서트 실황은 좋아하는 가수나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찾아가기 힘든 여건에서 단비와 같은 매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줄거리가 없이 공연 장면을 그대로 담아놓은 영상물이기 때문에 '음악 영화'라고 부르지는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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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어 라이트>는 음악 영화(특히 다큐멘터리)와 콘서트 실황의 경계선에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영화로 분류되기 보다는 밴드의 공연 자체가 중심이 되는 콘서트 실황에 좀 더 가깝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직접 등장하여 일종의 메이킹 필름이 도입부를 장식하고 중간중간에 롤링 스톤즈 멤버들의 옛날 인터뷰 장면들이 삽입되며, 마지막 장면 또한 뉴욕과 롤링 스톤즈에 대한 감독의 무한한 애정 표현으로 마무리되고 있긴 하지만 <샤인 어 라이트>의 주제와 내용은 결국 1962년에 결성되어 무려 45년이라는 긴 세월에 동안,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현역 밴드로서 음악 활동을 계속 해오고 있는 롤링 스톤즈 그 자체입니다. 사적 다큐멘터리로서의 성격이 약간 반영되어 있긴 하지만 작품의 본론으로 들어가보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역할은 결국 롤링 스톤즈가 스스로 연출해내는 순간들을 기록하고 편집하는 일이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니 <샤인 어 라이트>는 음악 영화이기는 하되 콘서트 실황에 좀 더 가까운 작품입니다.

물론 <샤인 어 라이트>를 롤링 스톤즈의, 롤링 스톤즈에 의한, 롤링 스톤즈를 위한 영화로 만든 것부터가 다름아닌 마틴 스콜세지의 연출 의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른 음악 영화나 다큐멘터리와 달리 거의 반 세기가 가까워오는 세월 동안 활동해온 이 '살아있는 역사'의 연주 실황을 담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드라마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 담긴 10 여 곡 가운데 초창기 발라드 넘버인 As Tears Go By를 연주하는 장면은 60대 중반의 나이에 칠면조 같은 얼굴을 하고 노래를 하는 믹 재거의 얼굴을 정적인 클로즈업으로 잡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정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샤인 어 라이트>에서 롤링 스톤즈는 As Tears Go By의 연주 이후에도 더 많은 곡들을, 전성기에 못지 않은 놀라운 열정을 담아 연주합니다. 중간에 삽입된 TV 인터뷰 장면들은 그들의 데뷔 초기부터 "언제까지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고 심지어는 "60대가 되더라도 지금처럼 연주할 수 있겠느냐"고까지 묻지만 이들은 그때 "당연하지"라고 장담했던 그 말을 지금 우리들의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 <샤인 어 라이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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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의 정치 평전이라 할 수 있는 <존 레논 컨피덴셜>(2007) 에서는 CIA가 "롤링 스톤즈는 멍청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롤링 스톤즈가 당시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 무신경하고 기껏해야 마약 스캔들이나 일으키고 다니는 하류였다는 식의 뉘앙스지요. 자신의 반체제적 성향과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결합시키며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존 레논과 달리 롤링 스톤즈는 확실히 자신들의 음악 활동과 여자들에게만 관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면서 밴드의 리더로서 뛰어난 사업가적 자질마저 엿볼 수 있게 하는 믹 재거와 <캐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를 연상시키는 키스 리처드의 4차원적인 이미지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단순함과 열정이라는 공통 분모 덕분이 아니었겠냐는 생각도 해봅니다. 젊은 시절에 잠깐 재미를 보고 이후로 활동이 흐지부지했던 밴드였다면 그저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어떤 메시지를 줄 수는 없는 일이겠죠. 여전히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과 그것을 통한 물질적인 여건이 전제가 되고 있긴 합니다만 그 열정이 오랜 시간에 동안에도 변함이 없는 지속적인 것임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들도 제 나름의 숭고함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샤인 어 라이트>에 담긴 롤링 스톤즈의 모습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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