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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샤인 어 라이트 Shine a Light


70세가 넘은 재즈 기타리스트가 공연을 한다든가 (5년 쯤 전에 내한했던 짐 홀 할아버지) 60세가 넘은 블루스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이 라이브 연주를 하는 것은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에릭 클랩튼이 속했던 전설적인 밴드 "크림"이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2005년에 기념공연을 가졌을 적에 66세의 할아버지가 된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가 엄청난 연주를 할 때에도 그 정정함에 놀라긴 했지만, 열정적인 동시에 중후함과 연륜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60세가 훌쩍 넘은 뮤지션들이 무대 위를 뛰어다니면서 락앤롤 공연을 한다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그 공연이 세계 37개국을 순회하면서 매진을 기록하면서 지난해만 해도 4천억원의 공연 수입을 올렸다면 이건 웬만해서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정말로 이런 일이 가능한지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 극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몇 군데 극장에서밖에 안 하고 있긴 하지만, 음악 영화에 있어서도 상당히 신뢰할 수 있는 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롤링 스톤즈의 공연을 필름으로 담은 <샤인 어 라이트>(Shine a Light)가 개봉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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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극영화 연출로도 거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지만, 밥 딜런의 다큐멘터리 <노 디렉션 홈>(2005)이라든가 블루스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더 블루스>(2003)의 제작, 그리고 밥 딜런의 밴드로 유명한 The Band 의 마지막 공연을 담은 <The Last Waltz>(1978) 등의 훌륭한 음악 영화들을 우리에게 선사해 왔다. (캐나다 출신이지만 그 어떤 밴드보다도 미국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포크락 밴드인 "The Band"의 다큐멘터리 <마지막 왈츠>는 공연과 인터뷰가 교차되는 형식으로 <샤인 어 라이트>와 형식적인 면에서 많이 유사하다.)

빠른 속도로 재잘대는 그 특유의 말투로 등장하는 감독 본인과 롤링 스톤즈 멤버들의 짧은 대화 장면들, 그들의 20대 시절을 볼 수 있는 풋풋한 인터뷰 장면들, 그리고 2006년 뉴욕의 비콘 극장에서 열린 "A Bigger Bang Tour" 라이브 공연의 연주 장면들로 구성된 이 음악 다큐멘터리는 마치 공연장에서 직접 공연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줄 뿐만 아니라, 그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은 듯한 네 명의 멤버들의 젊은 시절과 현재를 오버랩시켜 준다.

무대와 관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파워가 아직도 여전한 믹 재거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직도 순수함을 드러내는 키스 리차드, 과묵하면서도 까칠한 찰리 와츠, 젊은 시절의 모습을 가장 많이 유지하고 있는 로니 우드.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는 다른 밴드들과 달리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네명 다 성격이 아주 좋거나 네명의 케미스트리가 아주 잘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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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꽃미남 외모가 무색해진 키스 리차드를 보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지만, 쟈니 뎁 아버지인 해적으로 출연할 만큼의 패션 센스와, "You Got the Silver"와 "Connection"에서 들려준 멋진 보컬로 여전한 매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들의 음악이 지금 세대들에게 전혀 낡은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도 신선하며 아직도 에너지 넘치는 그들의 락 음악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곡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팝음악 프로그램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배철수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시그널로 사용하고 있는 음악이 "(I can't get no) Satisfaction"(편곡된 버전이지만)이라는 것이 롤링 스톤즈 음악의 팝 역사에서의 포지션을 시사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OST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영화에서는 빠진 "Paint it Black"의 연주를 못 본 것은 아쉽지만 (DVD에는 보너스 영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의 생생한 연주 순간을 영상으로 만들어 준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뿐이다. 공연 시작 직전까지 플레이리스트(연주 곡 목록)을 받지 못해서 안절부절하던 그는 일단 공연이 시작되자, 능숙한 연출로 역동적인 공연 장면을 너무도 효과적으로 잡아내었고, 치밀한 카메라워크와 편집으로 내가 촬영된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연장에 와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었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잭 화이트, 버디 가이가 게스트로 출연하는데, 버디 가이의 그 묵직한 파워 보컬과 연주는 단연 최고였다. 키스 리차드가 감동해서 즉석에서 기타를 선물할 정도로... 버디 가이와 함께 한 "Champagne & Reefer"에서의 블루스 느낌, "Far Away Eyes"에서의 컨츄리 느낌, 그리고 약간 낯뜨거운 곡이라고 소개하고 부른 "As Tears Go By" 의 팝 느낌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기도 하지만, 엄청난 락앤롤의 향연 속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가 영화를 본 건지 공연을 본 건지 헷갈리게 된다. 그리고 (그럴리는 없지만) 언젠가 믹 재거를 만나게 된다면 묻고 싶어진다. 도대체 그 나이에 20대 청년의 젊은 혈기와 10대 소녀의 허리 사이즈를 유지하는 비결이 과연 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