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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집오리와 들오리의 경계 허물기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집오리와 들오리의 경계 허물기

Japan;2007;110min;35mm;color
Director: Yosihiro Nakamura
Cast: Eita, Ryuhei Matsuda

도르지 : 집오리와 들오리의 다른 점이 뭘까?
코토미 : 글쎄, 집오리는 외국에서 데려온 오리고 들오리는 원래 일본에 있는 오리가 아니겠어.
도르지가 동물원 연못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집오리와 들오리를 보고 코토미에게 질문을 한다. 그리고 코토미는 질문에 확실하지 않은 듯 애매한 답을 뱉는다. 뭐가 정답이든 생활 영역이 달랐던 두 오리는 동물원의 한 연못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마치 부탄에서 온 유학생 도르지와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일본 사람들을 환유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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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오리(foreign duck)가 처음 일본에 들어왔을 때, 그래서 동물원의 연못에 들오리(native duck)들과 함께 살게 됐을 때, 그 연못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들오리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외래종에게 극도의 반감과 함께 공격성을 보였을 것이고 집오리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사를 건 적응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 둘 사이에 나름대로 삶의 규칙이 생기고 연못은 '평화'를 되찾게 될 것이다. 집오리가 들오리도 변하든, 아니면 집오리와 들오리가 서로를 인정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든 말이다. 연못에서 집오리가 살기 위한 규칙. 그것은 아마도 부탄에서 온 도르지가 일본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과도 다르지 않다. 연못은 곧 사람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도르지가 얻은 규칙은 무엇일까? 집오리 도르지가 얻은 규칙은 들오리 '가와사키'로 사는 것. 착하고 약한 부탄인 도르미가 아닌 강한 일본인 가와사키로 사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애초에 도르지는 강아지를 살리기 위해 도로에 몸을 던질 정도로 선한 인간이었다. 윤회를 믿기에 현재의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덕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본에 온 때묻지 않은 부탄인이었다. 하지만 도르지는 연인 코토미와 친구 가와사키를 지키지 못한다. 눈 앞에서 코토미와 가와사키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는 선(善)이 작동하지 않는 일본에서 강한 들오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자신이 집오리라는 사실을 숨긴 채 그는 말투에서 행동까지 완벽한 들오리, 가와사키가 된다.

가와사키, 도르지, 코토미. 세 명의 과거에 대학 신입생 시나가 뛰어든다. 도쿄에서 공부를 위해 센다이로 이사온 시나와 그의 옆방에 살고 있는 도르지가 친구가 된 것. 어울리지 않는 그 둘을 친구로 엮어 준 것은 밥 딜런의 노래<Blowin in the wind>이다. 시나에게는 첫사랑 여자친구 때문에 유일하게 흥얼거릴 줄 아는 팝송이고, 도르지에게는 코토미와 가와사와의 추억을 살아있게 하는 노래이다. 노래 한 곡을 통해 센다이에 살고 있는 집오리 두 마리는 그렇게 친구가 된다. 대학공부를 위해 타지로 이사를 온 시마와 순식간에 친구 둘을 잃어버린 도르지는 모두 친구가 필요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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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부터 집오리와 들오리의 관계가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가와사키, 코토미, 도르지의 관계에서는 집오리와 들오리의 역할이 분명했다. 가와사키와 코토미가 들오리라면 부탄인 도르지는 집오리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시나와 도르지의 관계는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다. 일본이라는 땅덩어리로 보면 도르지가 집오리가 되고 시나는 들오리가 된다. 하지만 기준을 센다이로 한정하다면 들오리는 가와사키로 변한 도르지가 되고 집오리는 도쿄에서 온 시나가 된다. 또한 부탄인 도르지와 도쿄인 시나의 입장에서 봤들 때는 센다이에서 둘다 집오리일 뿐이다. 이런 애매한 관계는 도르지가 가와사키인 척하며 시나와 각각 집오리와 들오리라는 명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은 역할에 맞춰 안정과 조화를 이루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와사키가 도르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든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다. 한 순간에 집오리가 들오리가 되고 들오리가 집오리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후사정도 모른 채 도르지의 복수극에 뛰어들게 된 시나는 도르지를 원망한다. 도르지가 저지른 엄청난 복수를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나는 도르지를 탓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 "내가 부탄인인 줄 알았다면 나와 친구가 됐을까?" 라고 물었던 도르지의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들오리 가와사키가 아닌 집오리 도르지에게 시나가 어떤 존재가 됐을지 시나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 인도 여성이 나오는 장면이나 부탄인인 줄 알았던 옆집 남자에게 시나가 보인 행동에서 보이듯 시나에게 외국인은 도움을 줘야 할 대상, 연민이 필요한 대상이었지 친구의 대상은 아니었다.

결국 시나는 집오리든 들오리든 상관없이 도르지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코토미와 가와사키가 그랬듯 도르지의 잘못을 <Blowin in the wind>의 노랫말에 담아 코인로커에 봉인한다. 그제서야 도르지 역시 들오리 친구를 갖게 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가와사키가 된 도르지가 다시 도르지로 돌아오는 메타포를 담고 있다. 일본이라는 연못에 들어온 집오리 도르지는 살기 위해 들오리인 척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공존이 아닌 엄청난 폭력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집오리와 들오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다. 왠지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었다고 말만 떠들석하게 하는 바다 건너 우리들에게도 전혀 울림이 없는 메시지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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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드라마에 충실하면서도 형식적으로 미스터리의 구조를 따르면서 관객들의 긴장을 효율적으로 조절하고 있다. 현재의 시나와 도르지의 이야기와 과거의 코토미, 가와사키, 도르지의 이야기가 교차로 흘러가는 형식 역시 극의 흥미를 점층적으로 높이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밥 딜런의 음악과 더불어 에이타를 비롯한 어린 친구들의 범상치 않은 연기가 영화를 보는 내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P.S. 2008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영화다. 일드에 큰 관심이 없어 부천 시청 앞에서 에이타를 목전에서 보고도 "누군데 저렇게 소란스럽나?"하고 무시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가 에이타인 줄 알았다. 진작에 알았다면 나도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 섞여있었을 텐데 아쉽다. 아무튼 <조제~~~>의 츠마부키 사토시 이후에 눈여겨볼만한 일본 배우가 생겨서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