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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소리 아이] 사심 없는 카메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소리 아이 (Lineage Of The Voice)
백연아 감독, 2007년

판소리 명창을 향한 두 소년의 꿈과 열정

누구나 한 번쯤 어린 시절에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피아노학원이나 미술학원을 다닌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술적인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키워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이의 재능을 키워 소질을 발휘할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만, 정작 이런 부모의 뜻은 아이들에게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해 잦은 갈등을 낳기 마련이다. 아이의 삶은 부모의 것이 아니기에 부모의 뜻은 아이들의 꿈과 자꾸만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리 아이>는 판소리 명창을 향한 꿈을 가진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대니얼 고든의 <어떤 나라>를 비롯해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했던 백연아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을 통해 부모의 뜻과 아이의 꿈의 접점을 찾으려고 한다. 거기에는 어린 시절 부모의 뜻으로 피아노를 배워야만 했던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생겨난 관심이 녹아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소리 아이>가 ‘소리’보다는 ‘아이’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영화는 두 주인공 박수범과 박성열의 판소리 명창에 대한 막연한 꿈과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부모의 뜻을 조명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11살 박수범은 같이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누나들의 장난으로 넘어지기만 해도 울음을 터트리는 어린 아이지만, 판소리를 할 때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진지한 소년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수범에게 판소리 명창에 대한 꿈은 막연하다. 그 뒤에는 아이의 소질을 키워주고 싶다는 아버지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소질을 키워주고 싶다는 아버지의 뜻이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는 의문이 생긴다. 9살 박성열의 사연은 좀 더 기구하다. 판소리에 대한 꿈을 이루지 못한 성열의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아이에게 소리를 가르친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때로는 술에 취한 나머지 아이가 겪기에는 너무 심한 비인격적인 행동마저 서슴지 않지만, 성열은 그런 아버지를 죽어도 싫다고 말하지 않는다. 판소리에 대한 질문에 수범보다 또랑또랑하게 대답하는 성열이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그 당당한 모습에서 어렸을 때부터 겪었을 힘든 일들이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에 걸쳐 촬영한 두 소년의 이야기를 병렬식으로 나열하는 <소리 아이>는 그러나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인물들의 삶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여과도 없이 담겨진 아버지와 아이들의 모습이 때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특히 성열의 에피소드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아이에게 이토록 심한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카메라의 윤리적인 태도에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인물들의 가장 가까운 곳까지 카메라를 가져가 그토록 진솔한 모습을 담아내려고 한 감독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모의 뜻과 아이의 꿈이 만나는 접점을 담아내고자 한 영화는 그 접점에 대한 판단만큼은 최대한 자제한다. 그에 대한 판단만큼은 관객의 선택으로 오롯이 돌아간다.


한편으로 판소리가 우리 고유의 한의 정서와 맞물려 있음을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아이들의 불편한 관계가 수긍이 가기도 한다. 어찌되었건 아이들은 자라난다. 3년 뒤, 13살이 된 수범과 11살이 된 성열은 좀 더 확고해진 꿈과 열정을 지닌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최대한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한 연출자의 태도와 단조로운 구성으로 생겨나는 지루함을 잊게 만드는 두 소년의 판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소년이 언제까지 판소리를 계속할 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영화 속에 담긴 꿈을 향한 열정에는 박수와 위로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