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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사과]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요?



사과
강이관 감독, 2008년

현실적인 이야기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다   

만남과 헤어짐에서 결혼과 불륜까지, 연애와 결혼이 모든 것이 담긴 영화 <사과>에 단 한 가지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핑크빛 로맨스다. <사과>는 기존의 로맨스영화가 지닌 연애에 대한 판타지를 걷어낸 보다 현실적인 연애영화다. 그러나 현실을 담은 영화라 재미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섣부른 편견이다. 오히려 현실적인 이야기이기에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야말로 <사과>의 가장 큰 미덕이니까 말이다.


영화는 7년 동안 사귀어 온 현정(문소리)과 민석(이선균)의 갑작스런 이별로 시작한다. “내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영원히 변치 않을 두 사람의 사랑은 민석의 갑작스런 한마디로 끝나버린다. 갑작스런 이별만큼 새로운 만남 역시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온다. 같은 빌딩에서 일하고 있는 상훈(김태우)이 현정의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이별의 아픔이 채 아물지 않은 그녀에게 사랑에 서툰 상훈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몇 번의 작은 만남, 그리고 “이 빌딩에서 현정 씨가 제일 예쁘잖아요”라는 상훈의 소박한 한 마디에 현정은 마음의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마침내 결혼에 이른다.

<사과>가 그리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여느 로맨스영화에서나 볼 법한 운명적인 만남과 낭만적인 결혼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정이 상훈을 만나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보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이들의 이야기가 단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판타지’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실제 50쌍의 커플을 인터뷰한 자료를 바탕으로 얻은 남녀관계의 세세한 모습들을 각본에 담으려고 한 강이관 감독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또한, 인물들 사이의 작은 감정변화까지 담고자 한 카메라는 인물들의 감정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며 영화의 공감대 형성에 한몫을 한다. 그래서 영화 내내 인물들이 관객에게 밀착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랑이 왜 힘든지에 대한 의문이 영화의 시작이었다”는 강이관 감독의 말처럼 <사과>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과도 같은 영화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나름의 가치기준을 갖고 살아간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서로 다른 가치기준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다름없다. 문제는 누가 얼마만큼 양보하느냐다. 아무리 상대방을 사랑한다 해도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는 민석의 그 한마디는 이기적이기에 어려운 사랑의 모습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현정과 상훈의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오해와 갈등이 생겨나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온 만큼 두 사람도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다.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양보할수록 두 사람이 처음 느꼈던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권태로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현정 앞에 다시 나타난 민석은 지난날 자신의 이기적이었던 행동을 반성하며 뒤늦게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날 양보하는 게 사랑임을 깨달았어.”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런 사실을 깨닫는 건 언제나 사랑이 한참 지나간 뒤의 일이다. 현정 역시 뒤늦게야 깨닫는다. “난 참 사랑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노력은 많이 안 한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과연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과>를 보다보면 자연스레 지나간 사랑과 현재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연애와 결혼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만나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그럼에도 대중적인 호흡을 놓치지 않고 있는 이 영화가 뒤늦게라도 개봉을 하게 되어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