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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사과> 당신은 어떻게 사랑하고 이별하나요?

<사과> 당신은 어떻게 사랑하고 이별하나요?


Korea; 2005; 118min; 35mm; Color
Directing: 강이관
Casting: 문소리, 김태우, 이선균, 최형인, 강래연

<사랑과 전쟁>이 주는 텁텁한 교훈이기는 하지만 사랑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고 결혼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언젠가 결혼이라는 목표지점에 다다른다. 그렇지 못하면 인간으로서 할 도리를 못하고 있는 듯 불안해 하는 이들도 있다. 한 스펙트럼에 나란히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양 극단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사랑과 결혼.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숱한 시인, 철학가, 예술가 등등이 나름 사랑과 결혼을 정의했지만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굳이 책 찾아보지 않아도 몸이 이미 알고 있고, 경험 못 해본 이라도 어깨너머로 들은 얘기, 본 얘기 종합하면 비슷하게 때려맞출 수 있다. 언뜻보면 각양각색 동방신기 노랫말처럼 사랑은 '뭐다뭐다 이미 수식어 레드오션'이지만 그 감정이란게 자신에게만 특별할 뿐이지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내 사랑이 영화같고, 내 결혼이 사연 많아보여도 툭 까놓고 보면 '방법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찌보면 그 방법론의 차이가 늘 사랑과 결혼을 다르게 포장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전과는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만의 것으로 말이다.

그렇담 왜 사람들은 나에게만 특별할 뿐 비등비등한 사랑과 결혼 이야기에 늘 오감을 집중하게 되는 걸까? TV를 켜도, 음악을 들어도, 그림을 봐도, 책을 열어도, 친구와 얘기를 해도 사랑과 결혼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전혀 어색한 일은 아니다. 캐릭터도 비슷하고, 스토리도 차이 없고, 결말까지 뻔히 들여다 보이지만 두 가지 이야기는 '시장'에서 늘 수요와 공급이 넘쳐난다. 누군가는 현실과 다른 환타지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하고 결혼하는지"를 엿보고 싶은 관음증적 호기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도저도 아니면 많고 많은 시간 하릴 없는 나같은 솔로들이 외로운 허벅지 찔러감서 설렜다가, 삐쳤다가, 꼬였다가, 다시 열렬히 사랑하는 그 소소한 감정들을 잊지 않기 위한 안쓰러운 노력일지도 모른다. 암튼 뭐가 됐든 정답은 정해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늘 세상은 사랑과 결혼 '이야기들'로 풍만하며, 언제나 잠시만 눈과 귀를 집중하면 어렵지 않게 이야기 몇 개 낚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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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하나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낚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영화는 환타지도 아니고, 관음증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솔로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저렴한 감정들에도 참 인색하다. 오히려 궁색하고 옹색하고 남루하고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 그러면서도 화장, 조명 다 없애고 현실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스크린에 나선 이 친구들을 한 번 안아주고 싶은 마음도 든다. 포장 다 벗겨내고 알몸으로 나온 사랑과 결혼이란 이 친구를... 강이관 감독의 <사과>가 얼마 전 개봉했다. 개봉관 코 앞까지 갔다가 거절당하기를 수십회, 불황 제대로 타는 충무로 영화시장에 맞춰 어느 언론사 헤드라인처럼 '창고영화 대방출' 시즌에 드디어 개봉관을 잡았다. 2005년에 만들어졌으니 꼭 3년이 흘렀다. 그 동안 영화제에 몇 번 소개되고, 상도 받아오면서 영화 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적지 않았다. 드디어 뚜껑이 열렸다. 너무도 젊어 심지어 앳돼 보이기까지 하는 문소리, 김태우, 이선균을 스크린에서 보자마자 실소가 터지지만 결과적으로 <사과>는 확실히 다른 창고 영화들과 싸잡아 매대애서 팔리기에는 뭔가 자존감 상하는 구석이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사과>는 평범한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랑과 결혼이야기이다. 지리멸렬하고 궁색하고 예뻐보일 것 없는 옆에서 보고 있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그런 사랑도 아니다. 그저 주변에 널린 그런 사랑이고 결혼이다. 사랑하는 것도 이별하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심지어 사는 것도 우리 주변 누군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마저도 들지 않는다. 커피숍에 앉아 친구의 입을 통해 친구의 친구의 직장동료의 친척의 얘기를 듣고 있는 기분 정도.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엔딩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먹먹하고 꽉차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공유하는 진정성이 그 속에 담겨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문소리, 김태우, 이선균이 연기하는 현정, 상훈, 민석은 그래서 안쓰러우면서도 애틋하고 아프다. 그들이 마주하는 사랑과 결혼은 우리의 것들과 다르지 않다. 각자 우리 가까운 주변의 누군가를 대유하고 있는 이들,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같지만 그들의 방법은 모두 제각각이다. 우리도 그렇듯이.

현정(문소리) - 사랑은 함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극을 이끌고 있는 현정, 평범한 여인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어색한 애교를 부리고, 7년 사귀고 무턱대고 헤어지자는 남자에게 적당히 매달릴 줄 아는 그런 여인. 그리고 또 찾아온 사랑 앞에서 잠시 주저하다 또 다시 자신을 던지는 사랑을 믿는 여자다. 현정의 사랑은 늘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결혼은 사랑에서 출발한 선 어딘가에 있다. 자신과는 너무도 다르게 살아온 상훈과의 결혼생활이 시작되고 현정이 상훈을 따라 구미로 내려가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임신을 전하기 위해 구미에 내려와 그녀가 전한 말이다. 꽤 번듯한 직장에서 괜찮은 자리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그녀에게 "함께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도 결혼도 일방적이었는지 모른다. 너무도 예의 없이 자신을 차버린 전 남자친구와 달리 '배려'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상훈을 현정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미운 마음이 생긴다. 남자들은 그녀에게 말할지도 모른다. "날 좀 이해해주면 안 되니!." 남자들이 늘 주머닛속에 넣어 다니는 말. 하지만 현정은 그런 사랑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상훈(김태우) - 사랑은 지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정을 지극히 사랑하는 상훈.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들을 많이 닮은 인물이다. 그래서 가장 마음이 쓰인다. 마음에 둔 여자에게 수줍음, 쪽팔림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접근해 결국엔 사랑과 결혼에 골인하는 남자. 응당 남자라면 해야 하는 행동들이라고 통용되는 것들을 그는 교과서처럼 해냈다. 사랑하는 현정과 가정을 이루고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그리고 동시에 가정과 아내를 지키는 것이 그의 사랑이 부여한 책임이자 의무가 됐다. 자신보다 벌이가 좋은 아내와 처갓집 등쌀을 싫은 내색 없이 받아주며 상훈은 자신보다 가장으로서의 삶에 충실한다. 하지만 그의 사랑 방법은 결국 그에게 자충수가 됐다. 현정에게 거짓말을 하고 구미로 내려가며 그는 그것이 멀리 보면 아내와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현정이 아이를 갖고 구미로 내려온 후 그의 초조함은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위기, 가족에게 닥친 위기 모두 가장으로서 그가 막아내야 할 것들이었고, 그의 우산 속에서 가정은 평화로울 수 있다고 상훈은 믿었다. 아내와 그의 십자가를 같이 나눌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 애초 자리가 없었다. 결국 그의 사랑이 현정의 사랑을 차갑게 식혀 놓았다.  

민석(이선균) - 사랑은 자신을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7년을 만난 연인 현정을 보기좋게 차버리는,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 번도 널 잊어 본 적이 없다."는 말과 함께 다시 현정 앞에 나타나는 민석. 그의 사랑은 현정과 상훈보다 훨씬 이기적이다. 현정과 상훈도 자신만의 사랑의 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둘은 기본적으로 사랑이 상대방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민석은 그렇지 않다. "너랑 있으면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 헤어지는 이유를 알려달라는 현정에게 그가 던진 말이다. 20대 후반에 벌이 좋은 직장도 없이, 그럴 듯한 집안 배경 없이 불안하게 공부하는 민석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너무도 배려와 예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현정과 다시 만남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공부를 포기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민석은 그제서야 현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현정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서울로 올라온 현정도 민석을 다시 만나지만 그건 옛 사랑에 대한 추억이나 미련이기 보다 지금 사랑이 힘들고 고되기 때문이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떠올리는 모든 현재의 연인들이 그렇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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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각 사랑의 방식을 가진 현정, 상훈, 민석. 이들은 상대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상대의 사랑이 크지 않다고 의심할 수도 있다. 어찌보면 그것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인지도 모른다. 이제 세 명에게 남은 건 '이별'뿐이다. 사랑의 방식도, 성격도, 집안의 환경도 다른 이들이 만나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다. 마지막 모습이 추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별을 앞에 두고 그간 그들이 했던 사랑을 존중하고, 마음에 감사할 필요가 있다. 민석처럼 애매모호한 말과 행동은 이별의 예의가 아니다. 모든 걸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태도... 현정은 그런 민석의 태도 때문에 상훈에게 다른 방식으로 이별을 알렸을 것이다. "당신의 탓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탓"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정이 상훈과 함께한 마지막은 그 간의 사랑에 대한 이별이자,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였다.


P. S. 리뷰를 다 쓰고 다시 읽어보니 마치 무슨 사랑학박사인양 적은 느낌이다. 아직 어린 나이 사랑을 해 본 경험도 적고, 사랑을 한 사람도 많지 않다. 그래서 현정, 상훈, 민석이 100% 이해되지도 않고, 100%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사랑과 이별에 마음이 쓰일 뿐이다. 내 주변의 누군가의 이야기같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