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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매직 아워] 웃어라, 웃으면 행복해질지니


매직 아워 (ザ・マジックアワー / The Magic Hour)
미타니 코키 감독, 2008년

영화와 현실의 간극에서 솟아나는 웃음

미타니 코키 감독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의 작품들이 특별한 상황 속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라디오 드라마의 제작과정(<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한 호텔(<더 우쵸우텐 호텔>) 등 미타니 코키 감독은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미타니 코키 감독은 여러 명의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다층적인 플롯이 정교하게 얽혀가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각각의 인물들은 서로 충돌하면서 이야기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시켜나가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영화는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시킨다. 그 웃음이 억지스럽지 않은 것은 그의 정교한 연출 때문이다. 미타니 코키 감독 영화의 즐거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전작 <더 우쵸우텐 호텔>로부터 3년 만에 발표된 <매직 아워>는 변함없는 미타니 코키 식 시추에이션 코미디다. 감독 특유의 다층적인 플롯과 그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연출도 그대로다. <매직 아워>에서 미타니 코키 감독은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벌려놓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웃음의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보스의 애인과의 애정행각이 들통 난 빙고(츠마부키 사토시)가 전설의 킬러 데라 토가시를 찾아오면 목숨을 살려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풀려나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빙고가 살고 있는 도시 ‘스카고’는 현실이라기보다는 영화에 가까운 공간이다. 시카고에서 이름을 빌려온 것이 분명한 스카고는 그 이름처럼 마치 갱스터영화에 나올 법한 그런 분위기의 도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인데, 신기하게도 그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들의 삶을 ‘진짜 현실’이라고 간주를 한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시작부터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벌여놓는다. 데라 토가시를 찾지 못한 빙고는 생각 끝에 무명배우 무라타(사토 코이치)에게 영화를 촬영한다는 핑계로 대신 데라 토가시 역할을 시킨다. 관객들이 영화를 현실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배우의 진실한 연기를 통해서라는 점에서, 배우는 곧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연결시켜주는 다리와 같은 존재다. <매직 아워>는 영화와 현실의 벌어진 간극 사이에 한 명의 배우를 개입시키면서 점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야기를 진행해간다.

영화의 매력은 그것이 현실이 아님에도 현실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에 있다. ‘영화 같은 삶’이나 ‘영화 같은 사랑’이라고 할 때의 영화는 곧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환상을 반영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적어도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 관객들은 그 이뤄질 수 없는 환상의 공간 속에 현실의 욕망을 투영하며 즐거움을 얻는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가 관객에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런 사실 때문일 것이다. <매직 아워>는 영화에 대한 이와 같은 진실을 영화와 현실의 간극에 끼어든 무라타를 통해 살짝 비틀고 있다. 다른 이에게는 현실인 세계가 무라타에게는 영화가 되는 순간, 영화는 웃음을 유발한다. 보스를 처음 만난 무라타가 세 번이나 같은 연기를 반복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현실과 영화가 충돌하는 긴장의 순간, 무라타는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며 위기의 순간들을 넘어간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알기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영화가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인만큼 <매직 아워>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무라타는 언제나 밝은 얼굴로 등장하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만년 단역배우로 지내야만 하는 설움을 간직한 인물이다. 그가 데라 토가시 역에 그토록 열심이었던 것은 그것이 자신의 첫 주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크린에 제대로 등장한 적이 없는 그에게 소망이 있다면 단 한 번이라도 스크린에 커다랗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무라타는 자꾸만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하길 바라지만, 그가 찍는 것이 영화가 아닌 이상 그의 요구는 거절당할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연기를 스크린으로 확인하는 무라타는 끝내 눈물을 흘린다. 그 순간, 영화와 배우에 대한 한 사람의 열정, 나아가 영화에 대한 미타니 코키 감독의 애정이 느껴져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또한, 무라타가 연기의 길로 자신을 이끈 노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그리고 올해 타계한 이치가와 곤 감독의 영화에 얼굴을 비추는 장면에서 전해지는 감동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미타니 코키 감독의 영화에서 웃음은 때로는 다층적인 플롯을 개연성 있게 마무리 짓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서 여러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해소보다는 웃음을 통한 봉합으로 귀결된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그랬다. 개연성은 다층적인 플롯이 지닌 작품에게 피할 수 없는 장애물과 다름없다. 그러나 <매직 아워>는 이러한 개연성의 위기를 쉽게 극복하고 있다. 그것은 <매직 아워> 스스로 뭐든지 가능한 영화임을 당당하게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이 억지스런 마무리라기보다는 영화이기에 가능한 마무리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매직 아워’는 영화 촬영 때 쓰이는 용어로, 태양이 사라진 뒤 어둠이 내릴 때까지 하늘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짧은 시간을 뜻한다. <매직 아워>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전해주는 감동을 간직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