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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쥴 앤 짐 (Jules Et Jim, 1962)



11월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를 통해 <쥴 앤 짐>을 두번째로 감상했습니다. 이 영화 처음 보았던 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 가늠을 할 수가 없군요. 당시 국내 첫 정식 개봉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개봉 연도가 97년인 것으로 나오는 곳이 있으니 그 때가 맞는 것 같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활홀해지는 프랑소와 트뤼포의 사랑 영화라고 해서 부푼 가슴을 안고 영화관에 갔다가 중간에 잠들었었죠. 뭐야 트뤼포, 수면제 영화로 그간 이름을 떨치고 있었던 거야? 아무튼 그 이후로 <쥴 앤 짐>은 '그리하여 세 사람은 나름대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내용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영화관에서 나를 잠들게 하는 영화는 모두 유죄인데, 그런 이유로 솔직히 <쥴 앤 짐>의 상영작 선정과 개인적으로 '다른 영화 3편 정도 볼 수 있을 만큼의 막대한 자원(시간과 기타 등등) 투입을 필요로 하는' 토요일 저녁시간의 관람이 영 마뜩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는 수 없죠. 관객이 고른 영화를 같이 보기로 하는 것이 블로거 상영회인 것을. 그리고 역시나, 빈 좌석이 거의 없는 만원 사례더군요.

<쥴 앤 짐> 상영 이후에 가진 관객 씨네토크를 통해서 이 영화를 보러오신 이유가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프랑소와 트뤼포가 갖는 영화사적인 의미 때문이거나 예전에 봤던 <쥴 앤 짐>의 감동을 다시 한번 맛보고자 하시는 분들(저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영화의 포스터나 "연애를 다룬 영화들 가운데 최고"라는 추천의 글에 낚였다, 이렇게 오래된 영화인 줄 몰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멍 때리고 앉아있었다는 등 솔직한 관객 소감이 이어져서 참 반가웠습니다. 프랑스 영화 전문가나 트뤼포 영화에 해박한 평론가와 함께 하는 씨네토크였다면 감히 얘기하지 못할 솔직한 얘기들을 주고 받자는 것이 관객 씨네토크인 만큼 특히 이번 <쥴 앤 짐>의 씨네토크는 '언제나처럼' 썰렁하게 시작하긴 했지만 결국 원래의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 좋은 시간으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1년 전에 처음 보면서 중간부터 자버렸던 영화 <쥴 앤 짐>을 이번에 다시 보니 제가 모르고 있었던 내용이 무척 많은 작품이더군요. 처음 봤을 때 잠에 빠졌던 시점이 영화 중간이 아니라 거의 초반 30분쯤부터였었던 모양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쥴과 프랑스인 짐의 우정에 이어 쥴의 애인으로 까뜨린이 이들과 맺어진 이후 세 사람은 20세기 초반의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게 되더군요. 그 사이 쥴과 까뜨린은 딸 아이를 하나 갖게 되었지만 오랜만에 이들과 재회한 짐은 쥴과 까뜨린이 사실상 남남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까뜨린은 새로운 사랑을 짐에게서 얻기를 원하고 짐 역시 오랜 연인을 두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흠모해온 까뜨린과의 사랑을 갈망합니다. 여기에서 작중 화자인 쥴은 두 사람이 맺어짐으로써 자신이 까뜨린의 곁에 머물 수 있기만을 바라죠. 그럼에도 까뜨린과 짐의 사랑은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하고 갈등과 이별을 반복합니다.

62년에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서 이렇게까지 '지금의 관객 입장에서 보기에' 어색할 이유는 없었을텐데 <쥴 앤 짐>은 아마도 앙리-삐에르 로셰의 자전적인 원작 소설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1910년대의 느낌을 영화 속 이미지를 재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문어체의 대사나 인물들의 행동, 그리고 카메라의 동선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봤을 때 무척 어색할 뿐만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져 처음 개봉되었던 1960년대에도 무척 고풍스러웠을 거라는 거죠. <쥴 앤 짐>의 전반적인 느낌은 거의 무성 영화 만큼이나 생경하고 인물들의 심리에 관한 묘사 또한 다소 듬성듬성하게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1910년대의 영상물에서 가져온 장면들이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점 역시 이채롭게 보여지더군요. 그럼에도 간간히 보여지는 몇몇 풍경들은 당시가 아니면 담아낼 수 없었던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여주인공인 까뜨린(잔느 모로)의 캐릭터는 당시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보아도 참 각별한 데가 있습니다. 물론 남성 작가의 회고담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고 그런 인물을 다시 남성인 감독이 연출한 지극히 '남성의 시각에서 묘사된' 여성상이긴 하지만(그렇기 때문에 까뜨린의 입장에서 설명되는 심리 묘사는 지극히 빈약한 편이죠) 그런 여성의 욕망과 그로 인해 겪을 수 밖에 없는 갈등을 비교적 현실적인 맥락으로 다뤄주고 있다는 점이 <쥴 앤 짐>이 '연애에 관한 영화'로서의 가치를 갖게 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화가 후반부에 이르면서 쥴과 짐 가운데 연애에 관해서는 젬병이었던 쥴이 다름아닌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군요. 작품 속에 삽입된 나레이션 역시 쥴의 음성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영화의 결말을 보니 역시 그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 초반에 잠시 등장했다가 쥴에게 상처만 주고 휙 사라진 떼레즈라는 젊은 여성(나중에 짐 앞에 다시 나타나 수다를 떨죠)이 '담배 연기를 뿜으로 증기기관차 놀이'를 하는 모습은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영화 <쥬드>(1997)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떼레즈(마리 드보아,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에도 출연)가 등장했을 때 그녀가 <쥴 앤 짐>의 여주인공이 드디어 나타나셨는데 잔느 모로랑 참 안닮았네, 했었습니다. 좀 더 나중에 등장하는 잔느 모로는 최근에 본 노년의 모습(<타임 투 리브>, <그들 각자의 영화관> 등)과 잘 매치가 되더군요. 그런데 저는 당시 잔느 모로 보다 마리 드보아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네요. 아무튼 <쥬드>에서의 그 장면이 <쥴 앤 짐>의 장면을 써먹었던 거였다니(악의적인 카피가 아니라 나름대로 오마쥬라고 해야겠죠), 역시 고전 영화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관객들의 눈에는 점차 낯설게 보일 수 밖에 없지만 후대의 작품들에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레퍼런스로서 오랫동안 살아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ps. 제가 생각하는 연애와 사랑에 관한 최고의 영화는 레오 까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1991)입니다. 올해에 본 영화들 가운데에는 <렛 미 인>(2007)도 무척 훌륭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