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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로큰롤 인생> 극장판 전국노래자랑 - They stay alive.


<로큰롤 인생> 극장판 전국노래자랑 - They stay alive.

UK; 2007; 108min; Documentary; Color
Director: Stephen Walker
Cast: Bob Cilmon, Eileen Hall, Bob Salvini, Fred Knittle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로큰롤 인생>을 보고 왔습니다.
다른 블로거 분들이 영화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저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뭐 워낙 음악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왠지 <로큰롤 인생>에 대한 감상은 그 동안 해왔던 장문의 딱딱하고 분석적인 글보다도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소소한 감정들을 일기처럼 그냥 술술 써내려가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 번 해봅니다.

평일 오후 한가한 시간이었지만 로큰롤 인생의 상영관은 제법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이었고요. 젊은 사람들은 찾아보기가 좀 힘들더군요. 기말고사의 탓도 있겠지만...

왜 영화를 볼 때 좋지 않은 편견이지만 그런거 있잖아요. <10세 미만 아이들과 나이 지긋한 어른들 옆자리, 앞자리는 무조건 피해라!!!> 저는 상당히 이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거든요.

아이들은 초단기 집중력 때문에 상영 시작 10분도 안 돼서 좌불안석이 시작되고, 앞자리 발로 차고, 엄마 아빠한테 질문폭격을 날리고... 하여간 근처에 있으면 영화에 집중하기가 좀 힘들죠. 가끔은 알밤을 한 대 쥐어박고 싶게 만들죠. ㅋㅋ 때문에 애니메이션도 아이들이 없는 늦은 밤 시간에 보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어른들도 참 난감하죠. 영화에 상관 없이 도란도란 재미있게 담화를 나누시는 분들도 계시고, 코를 골며 숙면을 취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심지어는 전화기를 붙잡고 생중계를 하시는 분도 있고요.^^


<로큰롤 인생>도 어른들이 많아 참 걱정을 쫌 했습니다. 정말 어른들이 거의 70% 이상이더군요. 더구나 아트하우스 모모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양 옆과 앞자리 모두 '어른들'이었습니다. 사면초가였죠. 정말 오랜만에 "내가 여기서 젤 어리다.!!!"라고 외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93의 할머니의 독창으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제 왼쪽 옆좌석부터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60대 후반 쯤의 할머니 두 분이셨는데 등을 의자에 기대지시도 못한 채, 박수를 치면서 장단도 맞추시고, 어깨도 들썩이시면서 말이죠...

시간이 흐를수록 박소소리도 웃음소리도 커지고, 나중에는 환호성까지 지르시더라고요.  순간 저 분들이 사실은 카트엘(카시오페아, 트리플S, 엘프)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웬 일일까요... 전혀 짜증스럽지가 않더군요. 평소같으면 '저 분들은 왜 저러실까...' 계속 싫은 눈길을 보냈을텐데 저도 모르게 웃고 있었습니다.

참, 영화 자체를 즐기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좀 조마조마 했거든요. 밤새 안녕 하실지 모르는 고령의 어른들 - 오가다 사고나면 어쩌나, 고음 올라가다 혈압 올라가면 어쩌나, 피곤해서 기력 약해지시면 어쩌나 하여간 이런저런 불안함을 놓치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어른들은 그런 걱정 없이 영화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재밌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아이들처럼 영앳하트의 주인공들과 웃고, 우는 감정을 함께 하면서 말이죠. 건방진 말처럼 들리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죽음에 대해 점점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두려움은 있겠지만 그게 순리인 것을 받아들이는 거죠.

영앳하트의 멤버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즐기고, 제 옆에 앉아 계셨던 어른들이 같이 호흡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할 수 있는 사고의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단순히 죽을 때가 됐으니까 인생을 좀 즐겨야겠다는 조바심이나 조급함이 아니라 당신의 근처 어딘가 가까이 있는 마지막을 인정하고서 진정으로 인생을 즐긴다고 해야 할까요. (They stay alive!!!) 저도 언젠가 나이를 먹어 그 분들처럼 되어 있다면 같이 느낄 수 있겠죠.^^ 친구들과 함께 봤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을 경험하게 해준 어른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옆의 할머니들께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 분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더군요. 그런데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들 주위에서 영화를 같이 봤던 분들 모두 두 노인을 향해 다정하게 웃어주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덕분에 영화가 훨씬 재미있었습니다."라고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더군요. 영화를 보면서도 여러 번 눈물을 흘렸지만 그 모습에 가장 마음이 벅찬던 것 같습니다.

영화도 좋았지만 극장에서 사람들과 영화를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잊고 있었던 감정을 다시금 상기시켜준 시간이었습니다.



P.S. 갑자기 전국노래자랑이 생각나더군요. 아직도 고향의 부모님은 일요일 1시만 되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전국노래자랑을 기다리십니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말이죠. 그리고 일주일 동안 이거보다 재밌는 건 없었다는 모습으로 텔레비전에 폭 빠져 있죠.

"저게 뭐가 재밌을까?, 다 늙은 노인네들 나와서 박자도 못 맞추고 음정도 틀리는 노래 부르고, 어기적어기적 몸을 흔드는 저런게 뭐가 재밌을까?" 어른들을 보며 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채널에서는 더 재미있는 게 많이 하거든요.

뭔가 모르겠지만 <로큰롤 인생>을 보면서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는 어른들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유치하다고 느꼈던 부분들에는 분명 지금 제 나이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이 녹아 있겠죠. 다음 주부터는 엄마손 잡고 전국노래자랑이나 같이 즐겨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