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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2007)


결백한 주인공이 기나긴 법정 투쟁 혹은 수감 생활을 견디어 내고, 승소하거나 자유를 찾는 이야기는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특히 헐리웃에서 자주 제작되는 극적인 줄거리의 법정 드라마는 마지막에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곤 합니다. 그러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연출한 이 일본 배경의 법정 드라마는 그동안 익숙하게 접해온 법정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우선, 피고가 저지른 범죄 (지하철 내의 치한 행위) 자체가 워낙에 경미합니다. (피해자가 입는 상처를 생각하면,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형량이나 벌금의 수준으로 볼 때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즉, 무죄를 위해 싸우려는 대의명분이 그다지 거창해지는 사건이 아니라는 거죠. 두번째는, 배심원이 등장하곤 하는 서양의 사법제도가 아닌, 우리나라와 비슷할 거라고 예상되는 일본의 사법제도를 비롯하여, 출근길 만원 지하철의 모습들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친근한 리얼리티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또하나, 주인공의 인간 승리 드라마가 아니라, 차디찬 현실을 그려내는 냉정한 시선은 헐리웃 영화가 안겨주는 "결국에는 정의가 승리한다"라는 판타지 대신에,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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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랏차차 스모부>(1992)와 <셀 위 댄스>(1996) 등의 코믹한 느낌의 영화들로 유명했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이번에 정색을 하고 정통 사회파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인상을 주더군요. 다른 군더더기 없이 주인공 텟페이의 심리와 주변 인물에만 집중하여 기나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듭니다. 물론 주연과 조연을 막론하고 펼치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영화를 강렬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고요. 뿐만 아니라, 일본의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대단하고 느끼곤 했던, 특정 직업의 인물들에 대한 세밀한 설정과 사법 절차에 대한 디테일을 묘사하는 정교함은 몇몇 부분에서의 작위적인 느낌을 제외한다면 완벽에 가까운 치밀함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체포되는 시작부분부터 마지막까지 감독의 목표는 단 한가지인 것처럼 보입니다. 일본 사법 제도의 모순을 정면으로 파헤치겠다는 의지. 형사사건으로 기소될 경우 유죄 확률이 99.9%라는 비정상적인 통계치를 비판하려는 의지 말입니다. 정말로 용의자가 99.9%의 비율로 유죄 판명을 받는다면, 재판을 선택하여 무죄를 얻어내려는 피고는 차라리 복권 당첨을 바라는 것이 나을런지도 모릅니다. 기나긴 재판과정 동안 소요되는 금전적, 정신적 피해 및 시간 낭비를 생각한다면 복권을 사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불리한 요소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재판"이라는 모험을 할 여력(금전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이 없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불명예"를 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진실"이나 "정의", "명분", "자존심", 이런 가치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지키려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텟페이의 선택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영화를 보면서 그런 의문이 들더군요.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가 "혐의 인정" 대신에 고달픈 "항소"의 길을 택하는 비율이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 말이죠. 그러니까 어쩌면, 강하게 무죄를 어필하는 사람은 정말로 "무죄"일 확률이 대단히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그런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더군요. 경찰관과 검사와 판사들은 기소 결과나 판결이, 조직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만 관심이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수행해야 하는 진실 규명이나 정의 구현과는 상관없이 말이죠. 물론 모든 경찰관, 검사, 판사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영화 안에서도 자신의 성실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판사가 잠시 등장합니다. 하지만, 조직을 우선하는 시스템 안에서 그는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기에 역부족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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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 전에 누군가 나에게 재판관의 가장 중요한 의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범죄 여부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이라는 피상적인 대답을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정말 중요한 원칙을 깨달았습니다. 재판관의 가장 큰 의무는 "무고한 사람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이라는 대원칙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영화 시작 부분에 나오는 "10명의 범죄인을 놓치는 것보다 1명의 죄없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문구는 영화를 보고난 후에 더욱 마음을 울립니다. 용의자가 실제 죄를 저질렀는지 아닌지를 누가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유능한 탐정이든, 형사든, 판사든 간에, 100% 완벽한 추리와 수사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진실을 아는 사람은 용의자 본인 뿐일 겁니다. 이처럼 완벽하지 못한 수사 시스템을 인정하고 나면, 죄인을 벌하는 것보다, 결백한 용의자를 풀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돌이킬 수 없는 판결인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주장 역시, 1%라도 무죄 확률을 가진 피고를 보호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걸로 압니다.)

이 세상에는 완전 범죄도 존재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연쇄살인범도 존재하며, 법망을 피해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악인도 많고, 심지어는 누구나 확신하고 있는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들도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이런 현실에서 엄정한 법 집행을 부르짖는다는 사실 자체가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더구나 법이나 권력을 악용하여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넣는 일이 손쉽게 자행되었던 우리나라의 과거를 돌아볼 때, "무죄" 선고보다는 "유죄" 선고를 얼마나 신중하게 해야하는지는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헛점 투성이인지를 드러내는 제도적 모순과 그런 "시스템"이 얼마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개인을 피해자로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현실을 용기있게 보여준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