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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씨네큐브

김영진, 허문영 평론가와 함께 한 <24 시티> 씨네토크


지아 장커의 신작 <24 시티>는 어찌 보면 꽤나 당황스러운 영화이다. 아무리 그의 롱테이크와 평범한 인물에 들이대는 카메라 앵글에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8명의 인물과의 인터뷰로만 이루어진 이 영화는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대하지 않으면, 깜빡 조는 순간 없이 감상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아 장커의 <세계>를 보고 도시에서의 삶의 허상과 쓸쓸함에 공감했던 관객들, 또는 <무용>에서의 무심하면서도 영민한 그의 비판적 시선에 매료되었던 관객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틸 라이프>를 보고 먹먹한 마음을 한동안 추스려야 했던 기억을 가진 관객들이라면 <24 시티>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아 장커의 예전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분들을 위해서 씨네큐브 광화문에서는 지아 장커 감독전(2/5~2/11)을 열어서 그의 대표작 6편을 상영할 예정이니 참고하시기를.
관련 정보: http://www.cineart.co.kr/wp/movies/festival.view.php?&fid=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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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신작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 높을 수 밖에 없지만,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영화 <24 시티>의 일부는 허구라든가 8명의 인터뷰 중에는 절반은 연기자가 연기한 것이라든가 하는 등등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우리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다큐멘터리 기법이 사용된 이 영화에 대해서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영화를 좀더 이해하는 데에 보탬이 되는 것 같다. (참고로, <24 시티>에 대한 평론가들의 대부분의 평가는 "열렬한 지지 및 놀라운 감탄"의 수준이다.)

1월 28일 김영진, 허문영 평론가가 참석했던 <24 시티> 씨네토크는 예상보다 많은 관객들의 참여로 지아 장커 감독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씨네토크 분위기는 진지했으며, 영화가 영화인 만큼 내용이 다소 무겁기는 했으나, 영화에 대한 몰랐던 사실이나 새로운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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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내용은 두 평론가 중 어느 분이 말한 것인가를 구별하지 않고, 그날 오고간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 인터뷰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영화는 지아 장커 감독이 의도적으로 "언어의 구술", 즉 이야기를 통해서 내용을 전달하는, 어떻게 보면 매우 전통적이고 오래된 방식을 채택한 영화이다. (다큐멘터리의 고전 <쇼아>에서 기록 화면을 배제하고 증언에만 의존한 방식을 사용한 것과도 비교됨.)

- 인터뷰이 중에서 4명은 실제 노동자이고 4명은 연기자이며, 그 4명은 중국인들이 본다면, 단번에 알아볼 만한 유명배우들이다.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배우는 물론 조안 첸이다.) 하지만, 실제 인물이 나오는 경우와 배우가 나오는 경우는 인터뷰의 도입부가 차이가 있어서, 배우가 나오는 경우에는 바로 인터뷰를 시작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인물의 등장 및 설정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 실제로 지아 장커는 130명의 노동자들을 인터뷰했으며 일부는 인터뷰 촬영에 응했고, 일부는 거절했다. 배우들이 연기한 부분은, 인터뷰를 거절한 사람을 연기한 것이거나,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여 연기한 것이다.

- 배우에 의해서 연기된, 혹은 아예 처음부터 가공된 내용의 인터뷰는 다큐멘터리 혹은 인터뷰의 약점이 될 수 있는 기록의 진실성, 이야기의 진위여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듯한 새로운 기록 방식인 것 같다. (과연 배우가 재연했다고 해서 진실이 아니고, 실제 인물이 말했다고 해서 반드시 진실일 것인가.)

- 배우가 연기한 부분, 즉 페이크 다큐 부분은 인물에 동화되지 말도록 하는 장치일 수도 있다. 인물에 지나치게 동화되지 말라는 의미이거나, 의도적인 거리두기일수도.

- 지아 장커는 인물 못지 않게 공간을 중시하는 감독이며, 그가 자주 사용하는 수평 트래킹의 카메라 기법은 공간을 강렬하게 지각하게 만드는 영상을 창조해 낸다.

- 지아 장커의 초기작은 허 샤우시엔을 떠올리게도 하는 인물 위주의 영화, 인물의 고뇌와 슬픔을 담은 영화 스타일을 취했지만, <동>, <스틸 라이프> 이후로는 좀더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을 많이 사용하면서 허구와 현실을 넘나드는 영화 스타일로 변해갔으며, 좀더 복잡하고 풍부한 영화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의 매체 변화도 그의 창작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준 듯 하다.

- 마지막으로 지아 장커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늦은 시간까지 남아준 관객들에게 동지애를 느낀다는 말에 관객석에 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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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토) 씨네큐브의 <24 시티> 마지막회 상영에는 이동진 평론가가 방문하여 또다른 씨네토크를 가지게 된다. (정성일 평론가의 씨네토크도 예정되어 있으나 아직 일정은 미확정이다.) 그만큼 <24 시티>에 대한 평론가들의 애정이 특별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듯한 씨네토크의 행렬이라고나 할까.

지아 장커는 중국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지만, 산업화와 세계화가 진행되는 우리나라에서도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울한 고도 개발의 기억, 노동자들의 남루한 삶, 성장이라는 명분 뒷편에서 피폐하게 소외되는 사람들... 철거되고 해체되어 가는 서울의 오래된 건물들과 영화 <24 시티>에서 최고급 아파트가 들어설 재개발 지역에서 허물어지는 군수공장은 묘하게 겹쳐진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영화의 미래"로 불리던 지아 장커가 "21세기의 씨네아스트"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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