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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더 레슬러 (The Wrestler, 2008)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최근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들을 상영하고 있어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더 레슬러'를 서둘러 감상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작품은 '꿈을 위한 진혼곡'밖에 본 적이 없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실험적인 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인물들의 몰락의 과정이 너무나 현실감있게 다가와서 한동안 잊지 못할 정도였으며 후에 DVD를 구입했지만 아직까지도 꺼내 볼 용기가 생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더 레슬러'는 '레퀴엠'에 비하면 비교적 준수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사실 '더 레슬러'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기존의 스포츠 영화의 구성을 그대로 따른다. 신체적인 한계로 링을 떠나지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기 위해 링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록키'같은 스포츠 영화를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더 레슬러'는 범작으로 머무를 수 있는 내용을 효과적인 연출을 통해 현실감을 부여하고 미키 루크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랜디라는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공감하도록 함으로써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영화는 주로 헨드핼드 기법으로 촬영되었는데, 주인공 뒤를 따라다니면서 촬영한 장면들이 마치 실제 인물의 삶을 추적해가는 느낌을 주면서 현실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현실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영화의 주인공인 랜디가 가상의 인물 같지 않다는 점이다. 랜디라는 레슬러를 연기하는 미키 루크의 모습은 영화라는 창작된 매체 속에서 활동하는 캐릭터가 아닌 정말로 한 때 잘나갔지만 이제 은퇴 기로에 놓여있는 레슬러로 느껴진다. '록키 발보아' 속의 록키가 부진을 거듭했던 실베스타 스텔론 자신의 삶이 담겨져 있는 것처럼 '더 레슬러'도 랜디라는 인물을 통해 배우로서 생명력이 다해버렸다고 생각한 미크 루크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영화는 링 안의 세계와 링 밖의 세계를 교차함으로서 랜디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링 안의 세계에서 랜디는 한물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관객과 동료 레슬러들에게 존경받는 스타이다. 전성기 때보다 많지는 않겠지만 그의 열광적인 팬들은 여전히 랜디 램을 환호하며 그의 승부를 지켜본다. 링 안에서 레슬러들의 격렬한 퍼포먼스가 진행되지만 대기실에서 상대방과 작전과 소품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교차함으로써 레슬링이란 스포츠가 두 사람의 진검승부가 아닌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레슬링이 아무리 짜고 치는 승부라고 하더라도 다른 종목에 비해 과격하고 위험이 따르는 스포츠이다. 2시간 동안 채찍을 맞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켜보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관객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선수들은 철제의자를 두들겨 맞고 심지어 면도날로 살을 찢고 스테플러 심을 살에 박는 과격한 퍼포먼스도 꺼리지 않는다. 경기가 끝난 후 피투성이가 된 랜디의 모습은 경기 후에 남겨진 후유증을 현실감있게 보여준다.

하지만 링 밖에서 생활하는 랜디의 모습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링 안의 모습보다 더 참혹하고 비참하다. 그는 집세를 낼 돈이 없어 차 속에서 잠을 청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형 마트의 관리자에게 굽신거리면서 파트타이머로 일한다. 링 안에서 강인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랜디의 모습과 대비해 사회 속에서 보여지는 랜디의 모습은 망가져가는 육체를 간신히 지탱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보청기를 귀에 달고 안경으로 책을 보는 랜디의 모습은 근육질의 레슬러가 아닌 나이 든 중년 남자의 초라한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랜디에게 재정적인 어려움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과 고독이다. 고요한 적막이 있는 낡은 집에서 홀로 여가를 보내는 랜디의 모습은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는 레슬링으로 번 얼마 되지 않는 돈을 가지고 스트립 댄서들이 춤을 추는 술집으로 찾아간다. 그 곳에서 랜디는 자신처럼 바에서 퇴물 취급받는 캐시디라는 여인을 만나 외로움을 해소한다. 사회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그에게 캐시디는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멘토이자 친구 이상의 존재이다. 하지만 영업시간 중 밖에 나올 수 없다는 등 규칙에 얽매여 있는 캐시디는 랜디가 접근할수록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를 제시하며 선을 긋는다. 결국 랜디와 캐시디는 술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관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