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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상영회

제5회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 <인 디스 월드>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로드 무비"라는 부제를 달았던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인 디스 월드>가 지난 금요일(2/27)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상영되었다. 이제 벌써 5회째를 맞는 씨네아트 블로거 상영회로 진행된 이번 상영에서는, "전쟁"이라는 테마로 선정된 다섯 편의 영화 중 2위에 올랐던 <노 맨스 랜드>를 세 표 차이로 앞선 <인 디스 월드>가 최종상영작으로 결정되었다.

2006년작 <관타나모로 가는 길>에서도 강한 정치색을 드러낸 바 있는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2002년 연출작이자, 56회 베를린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인 디스 월드> (국내 개봉은 2005년)는 자신이 살고 있는 비참한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선진국으로 밀입국하려는 한 청년과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아프간 난민 캠프에서 영국 런던까지 6400km를 육로와 해로를 거쳐 가야하는 이들의 여정은 "여행"이라는 낭만적인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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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난민촌에 살고 있는 자말은 12살의 어린 소년이지만 영어도 조금 하고, 생활력이 강하며 씩씩하다. 자말은 영어를 못하는 사촌형 에나야트를 런던으로 보내려는 삼촌을 설득하여, 자신도 런던행 밀입국에 동행하게 된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야 하는 마음 졸이는 매 순간마다 언어의 장벽과 엄중한 검문이 이들을 위협하고, 미리 돈을 지불하고 계약이 되어있는 각국의 밀입국 브로커들은 사기꾼처럼 이들을 착취한다.

파키스탄-이란-터키-이탈리아-프랑스-영국 런던에 이르는 머나먼 길을 가는 동안, 자말과 에나야트는 흔들리는 트럭 뒤에 타고 갈 때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것이고, 트럭 짐칸에 때로는 가축들과, 때로는 과일 상자와 함께 짐짝처럼 실려서 이동한다. 어쩌다 한번은 편안한 좌석 버스에 타기도 하지만, 아프간 말을 편하게 쓰지도 못하고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안한 여행을 해야만 한다. 파키스탄에서 이란으로 향하는, 모래 바람이 맹렬한 사막 여행에서는 주인공들이 견뎌 내야하는 사막의 황량하고 거친 모래바람과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내비치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묘한 대조를 이루기도 하고, 국경 수비대를 피해 눈 덮인 산을 목숨걸고 넘어야 하는 장면에서는 조명없이 찍은 심야 촬영이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그들의 절박함과 두려움이 온몸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너무도 생생해서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영화의 영상들은 People smuggling의 비인간적인 실상을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지옥같은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들은 지옥같은 여행을 통과해야만 한다.
- 마이클 윈터바텀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는 난민 캠프를 떠나 목숨을 담보로 한 지옥같은 여행을 하고 그 여행 끝에서 이들이 만난 것은 결코 밝은 미래는 아니다. 에나야트와 자말의 운명은 차디찬 현실 그 자체이며, 그것이 바로 파키스탄 페샤와르에 사는 100만의 아프간 난민들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비참하고 암울한 여행 도중에도 틈만 나면 동네 아이들과 공차기를 함께 하고, 언제나 농담으로 동행자들을 웃겨주던 자말의 밝은 성격과 마치 아이 같은 웃음을 가진 에나야트의 해맑은 미소는 영화의 결말을 더욱 마음아프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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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은 한 나라 안을 들여다 보더라도 익히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폭격으로 한 나라를 황폐하게 만든 가해국 국민들의 생활 수준과 피해국 국민들의 생활 수준의 격차는 이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가를 몸서리치게 느끼게 한다. 게다가 낯선 이방인을 가족처럼 맞이하여 따스하게 돌봐주었던 인심 넉넉한 쿠르드족들과, 카페에 들어가 팔찌를 파는 자말을 잡상인으로만 차갑게 대하는 이탈리아인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 "선진국"이라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면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인 디스 월드 In This World> 라는 제목으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묻고 있는 이 영화는, 4년만에 다시 보았는데도 마음의 울림은 여전하다.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아련한 슬픔을 자아내는 음악은 중간중간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고, 마지막에 클로즈업되던 난민촌 어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중간에 잠깐 지나치며 나왔던 장면이지만, 낯선 나라에서 돈도 넉넉치 못하고 자신의 바로 내일 일조차 불확실했던 에나야트가 거지에게 동전을 건네주던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타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얼마나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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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상영회 이후 씨네토크에서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진중한 많은 의견들이 나왔다.

물질적으로 빈곤하지만 따스한 인정이 있는 난민촌에서 살아가는 것과 선진국에 이주하여 불평등한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행복한 것인가에 대한 작은 토론도 있었지만, 난민촌의 환경이라는 것이 아마도 별로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달러 미만의 돈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삶이 과연 어떤 선택의 자유를 줄 것인가.

제주도에서 이사하여 서울의 도시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는 한 관객은 두려워하면서도 낯선 땅에서 어렵게 길을 헤쳐나가는 주인공들에게 공감을 많이 했다고도 했고, 세계의 양극화, 세상의 불평등, 그리고 선진국에서의 삶의 비정함에 대한 감상도 많이 오고 갔다. 또한 쉽게 접하기 힘든 아랍 문화권과 이슬람 종교에 대해 접할 수 있어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는 관객도 있었다.

한 관객 분은, 트럭을 타고 이동할 때의 자동차와 도로의 소음, 불법 체류자로 공장에서 일할 때의 커다란 기계 소음, 터널에서 대형 트럭에서 들려오던 소음 등 영화 속에서 불편한 소음이 강도높게 삽입된 장면들이, 그들의 고통과 고생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껴 보기를 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고 이야기하였다.

한시간 반 동안의 그들과의 동행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현실의 아주 적은 부분, 그들의 고통의 아주 작은 양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로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