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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도쿄 소나타 (トウキョウソナタ, 2008)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 소나타'는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일본 사회의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는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집 안을 향해 들어오는 강풍은 처음부터 암울한 시작을 예고한다. 사사키 가족의 가장인 류헤이는 서무 부서를 중국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 회사의 방침 때문에 자신이 평생 일하던 기업에서 해고를 당한다. 일본말을 유창하게 하며 일본인에 비해 저렴한 임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중국인을 반가워하는 모습과 대비해 평생을 서무 과장으로 일한 류헤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그에게 자발적 퇴직을 유도하는 임원의 태도는 자유 경쟁 시장의 공포가 느껴진다. 영화는 졸지에 실업자가 된 류헤이가 황량한 공원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통해 경제불황으로 시달리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낸다.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노숙자들과 함께 일일 급식을 얻어 먹으며 고용센터를 찾아가 하루종일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은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류헤이가 자신의 실직을 속이기 위해 좀전보다 일찍 집에 들어가는 과정은 더욱 황량하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류헤이와 어린 아들인 켄지의 모습은 아버지와 아들의 반가운 해후가 아닌 그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확인 과정처럼 느껴진다.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는 모습에서 가정의 화목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식탁에 앉는 순간 류헤이는 그의 큰 아들인 타카시가 자리에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 그의 아들에 대한 더 이상의 질문은 말하지 않는다. 타카시가 영화 중반부에서 등장할 때까지 그는 마치 죽은 아들이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식사를 마친 후 사사키 가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구역으로 되돌아간다. 1층과 2층으로 분리된 계단 사이로 분리된 부모와 자식 간의 경계의 모습은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에서 계단 사이로 분리된 부자 관계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장애물처럼 느껴진다.

직장을 잃은 뒤 거짓으로 회사를 나가는 척 하며 이중 생활을 하던 류헤이는 필사적으로 일자리를 찾지만 기업의 가혹한 세계는 그에게 굴욕과 무력함을 안겨줄 뿐이다. 기업을 찾아가 면접을 보지만 류헤이보다 어려보이는 인사 담당자는 그가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며 그에게 노래라도 불러 보라고 요구한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굴욕을 감수하고 펜을 잡아 입을 떼는 류헤이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정에서 가장으로 지키고 있던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남자들의 헛된 몸부림이다. 류헤이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친구 쿠로수의 부탁으로 그의 집에 찾아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한다. 류헤이를 마치 부하직원 다루듯이 하며 회사 생활을 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쿠로수의 자신만만한 행동 뒤에 찾아오는 침묵은 마치 가장인 남편의 처지를 애써 긍정하려는 사람들의 암묵적인 모습처럼 느껴진다. 이후 영화는 류헤이에게 '아저씨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라고 말한 뒤 계단을 올라가는 쿠로수의 딸의 모습을 통해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는 어른들에 대한 조롱을 공포스럽게 표현한다.

한편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류헤이처럼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도 각자가 희망하는 소망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류헤이의 아내인 메구미는 홀로 가정에 남아 가정 주부로서의 삶을 산다. 다른 가족의 일원이 올 때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는 등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지만 그녀는 보다 나은 새로운 삶을 추구할 욕구를 가진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동차 운전이다. 메구미는 자신이 노력해 얻은 결과인 운전면허증을 큰아들 타카시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지만 큰 아들은 차도 없는 그녀가 면허증을 가진 것을 두고 가장 비싼 신분증이라고 냉소적인 답변을 보낸다. 아들의 냉정한 답변에 메구미는 멋쩍게 그의 말을 받아들인다. 가족들이 식사를 마친 후 제자리로 돌아간 후 소파에 누운 메구미가 손을 쭉뻗어 나를 일으켜 달라고 혼잣말을 말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의 삶에 대한 구원을 바라는 듯한 절실함이 느껴진다. 한편 타카시는 가정을 나와 아르바이트로 삶을 살아가지만 전단지를 나눠주는 그의 모습은 힘겨운 듯한 느낌이 든다. 일본에서 프리터족으로 살아가던 타카시는 일본과 세계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미군을 지원하려고 한다. 그리고 켄지는 우연히 길에서 울려퍼지는 피아노 소리를 들은 뒤 피아노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실직한 사실을 숨기고 있던 류헤이는 단호하게 피아노 연주를 반대한다. 자칫 완고한 아버지 때문에 꿈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던 켄지는 급식비를 빼돌려 피아노 수업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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