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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숏버스] 화려함에 감춰진 또 다른 뉴욕의 모습


숏버스 (Shortbus)
존 카메론 미첼 감독, 2006년
 
편견 없이 모두가 하나 되는 그곳

1년 365일 꺼질 줄 모르는 타임스 스퀘어의 휘황찬란한 전광판들, 핍스 애비뉴의 고급스런 명품 매장들, 패셔너블한 옷들로 넘실대는 소호 거리, 매그놀리아 컵케이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쇼핑백을 든 ‘섹스 앤 더 시티’의 그녀들을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것만 같은 그곳. 사람들에게 뉴욕은 화려함으로 대변되는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의 뒤편에서 뉴욕은 앤디 워홀, 장 바스키아 등 팝아트의 거장들을 배출해낸 예술 도시로서의 풍모를 뽐내고 있는가 하면,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처럼 카페에 모여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뉴요커들의 모습이 있으며,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새롭고 다양한 문화들의 발원지와 같은, 말 그대로 예술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다.


<숏버스>는 화려한 뉴욕이 아닌, 예술과 문화의 도시인 뉴욕에 바치는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애정이 가득 담겨있는 영화다. 여기에는 9.11 테러로 인해 상처 입은 뉴요커들의 영혼을 위로하려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있다. 영화는 뉴욕을 상징하는, 그러나 당당한 이름과 달리 눈빛만큼은 너무나 쓸쓸한 자유의 여신상을 비추며 시작한다. 미니어처로 제작된 뉴욕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린 카메라는 빼곡히 들어선 고층 건물들 사이를 유유히 넘나들더니 이내 아무것도 없는 공터로 향한다. 지금은 ‘그라운드 제로’라 불리고 있는, 한때 세계 최고층을 기록한 세계무역센터가 있었던 바로 그곳. 발 디딜 틈이 없는 뉴욕 시내의 한 가운데를 황량하게 채우고 있는 텅 빈 공사장에서 전해지는 이질감은 곧 뉴요커들이 안고 있는 마음의 상처와 다름없다. 그 허탈함과 공허함을 잊기 위해 뉴요커들은 누군가와 함께, 혹은 혼자서 섹스에 몰두한다. 하지만 남는 것은 눈물과 지워지지 않는 상처뿐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숏버스>에서 이야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소피아(숙인 리)와 제임스(폴 도슨)다. 단짝과도 같은 남편이 있지만 단 한 번도 그와의 관계에서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한 소피아와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주는 남자친구 제이미가 있지만 그에게 단 한 번도 관계를 허락하지 않은 제임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진정한 소통이다. 자신들의 비밀을 숨긴 채 상대방과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두 사람은 모든 사람이 거침없이 솔직해지는 공간 ‘숏버스’를 통해 진심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간다. 모두가 서슴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감정에 충실하게 되는, 그 어떤 사회적 편견도 존재하지 않는 자유의 공간 ‘숏버스’는 불안과 상처 속에서 불감증에 빠진 두 사람을 위한 해방구가 된다.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이 자유로운 공간 ‘숏버스’를 통해 예술과 문화가 살아 숨 쉬던 뉴욕을 향한 짙은 애정을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자신이 한때 뉴욕 시장이었다는 어느 노인은 뉴욕이야말로 세상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가 모여들어 하나가 되는 공간이며 또한 모든 이들이 용서를 구하러 오는 곳이라고 지나간 시절의 뉴욕을 회고한다. 노란 스쿨버스에 탈 수 없는 소수자들이 모여든 ‘숏버스’처럼 뉴욕은 어떤 편견도 없이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 곳이었으며, 이들이 만든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뉴욕의 문화적 토양이 됐다. 옹기종기 모여 실험영화를 보고, 음악 연주에 맞춰 다채로운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섹스와 오르가슴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숏버스’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화려함 속에 감춰진 뉴욕의 또 다른 모습이다. 소피아와 제임스의 불감증이 곧 9.11 테러의 상처를 대변하듯, <숏버스>가 말하는 오르가슴 역시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의 의미다. 두 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을 정도로 배우들의 노출과 실제 섹스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하지만 <숏버스>는 오히려 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려내며 관객들 역시도 누구나가 있는 그대로 솔직해지는 ‘숏버스’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우주전쟁> <클로버필드> 등이 9.11 테러가 미국인에 남긴 상처를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이야기한 것과 달리, <숏버스>는 같은 주제를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틀에서 그려내고 있다.


전작 <헤드윅>에서 음악까지 도맡았던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숏버스>에서는 미국 인디록의 거장 욜 라 텡고에게 음악을 맡긴다. 욜 라 텡고가 한데 모은 미국 인디음악의 최전선에 있는 뮤지션들의 음악은 <숏버스>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후반부의 축제 장면에서 흐르는 마칭 밴드의 음악은 그토록 소통과 교감을 원했던 주인공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한 순간의 위안을 선사한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영화와 하나가 되도록 만든다. 한편, 영화 속에서 세 차례 등장하는 정전은 등장인물의 불안을 상징함과 동시에 2003년 8월 실제로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북부에서 대규모로 발생했던 정전 사태를 암시하기도 한다. 9.11 테러로 상처 입은 뉴요커들은 2년 뒤 발생한 정전 사태를 침착한 태도로 큰 혼란 없이 극복했다.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그 모습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숏버스>는 섹스를 통해 진정한 소통과 교감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인 동시에, 섹스라는 옷을 입고 뉴욕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다.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