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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2008)


'그랜 토리노'의 첫 장면은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월트 코왈스키라는 노인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면서 시작된다. 아내의 장례식 동안 사람들을 바라보는 월트의 표정은 불만에 가득찬 듯이 찌푸린 표정을 유지한다. 또한 장례식에서 삶과 죽음에 관해 설교하던 자코비치 신부의 말을 듣던 월트는 비웃음과 냉소로 그의 설교를 무시한다. 장례식이 끝난 후 조문객들이 집안을 가득 채운 가운데 월트는 그들과 대화하기를 거부한 체 자신의 애견인 데이지와 함께 밖을 나간다. 한편 장례식이 진행되는 월트의 이웃집엔 아시아 인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집 밖에 항상 성조기를 달아놓고 아들이 일본제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불편하게 여길 정도로 보수적이고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인 월트는 자신의 옆 집에서 축제를 벌이는 아시아 인들이 반가울리 없다. 월트는 바깥 정원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자신의 집 주변에 살고 있는 아시아인들에 대해 욕설을 하며 침을 뱉는다.

영화는 월트가 왜 이토록 찌푸린 표정을 한 체 홀로 살아가는지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지만 월트를 대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계하는 노인의 심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월트에게 안부를 전하는 척하면서 풋볼 회원권을 원한다든지 생일을 축하한다고 핑계를 대면서 아버지의 집을 양도받고 싶어하는 아들의 모습은 아버지를 가족의 일원이 아닌 그저 물질적인 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자신의 심정을 유일하게 이해해줄 배우자가 없는 월트에게 의지할 만한 친구는 그의 애견인 데이지 밖에 없는 셈이다.

한편 월트는 자신의 집을 하나의 영토라고 생각한다. 아시아 인들로 둘러싸인 공간 속에서 홀로 백인들의 미국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이 그는 자신의 집에 성조기를 계양 해놓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사람을 자신의 적이라고 규정한다. 물건을 빌리기 위해 온 아시아계 소년인 타오를 보자 무례하다고 문을 닫아버리는 월트의 모습은 외부의 침입자를 자신의 집 안에 들여 보내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자신의 소중한 자동차인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는 절도범을 잡기 위해 총을 들고 나서는 월트의 장면 속에서 북을 두드리는 효과음은 마치 그가 전쟁터에서 적을 상대하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

어느 날 자신의 옆집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월트는 총을 들고 갱단을 협박해 자신의 집에서 쫓아낸다. 어떤 이타적 동기 없이 자신의 정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침입자를 쫓아낸 것이지만 월트의 행동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교감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몽족 사람들은 고맙다는 인사로 음식과 선물들을 월트의 집 앞에 갖다놓기 시작하며 그의 옆집에 살던 가족은 월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화초를 건네준다. 아시아 인들에게 처음 받는 대접에 월트는 당황하며 그들의 성의를 거절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속된 성의를 받은 월트는 낯선 이웃에 대한 적대감을 조금씩 누그러 뜨리기 시작한다. 생일 날 홀로 정원에 앉아 술과 육포로 끼니를 때우던 월트는 수의 초대로 이웃집의 손님으로 들어와 몽족의 접대를 받는다. 처음엔 그들을 탐탁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월트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몽족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화장실에서 '어떻게 내 자식들보다 내 심정을 잘 알지'라고 한탄하는 월트의 모습은 그 자신이 사람들 간의 대화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월트는 타오의 어머니와 수로부터 차를 훔치려 한 타오에게 반성의 댓가로 일주일 동안 심부름을 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자신의 집에 낯선 자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했던 월트는 두 모녀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타오를 자신의 집 안에 들이게 된다. 일주일 동안 심부름을 위해 다른 이웃의 낙후된 지붕과 정원을 고치는 타오의 근면한 모습에 월트는 그에 대한 앙심이 사라져 간다. 젊은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며 그들의 예의없고 무례한 태도에 혀를 찼던 월트는 성실하고 착한 타오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장래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다. 월트는 남자답지 못하게 숫기없이 머뭇거리는 타오를 주체적인 남성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를 교육시킨다. 타오에게 남자다운 말투가 무엇인지 가르치기 위해 이발사와 함께 욕설을 섞어가며 대화하는 월트의 교육은 웃음을 자아낸다. 월트의 도움 덕분에 다른 사람을 보면 항상 주눅들던 타오는 어른들과 맞장구치면서 이야기하고, 좋아하면서도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던 유아란 여자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줍운 성격을 고칠 수 있게 된다. 한편 월트는 타오가 갱들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그의 장래를 도와준다. 무엇을 할지 조차 모른 체 앞날에 대한 전망이 없었던 타오는 월트의 성의 덕분에 건설업자 밑에서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으며 월트가 평생동안 벌어 구비한 연장들도 마음껏 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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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영화가 끝난 후 흘러나오는 테마 곡이 일품이다. 가사 번역까지 되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ps2. '그랜 토리노'는 미국에서 R 등급을 받았는데 영화 속에서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은 후반부를 제외하고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마 R 등급을 받은 건 이스트우드 옹의 인종 차별적인 욕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발사와 함께 서로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날리는 모습은 불쾌하기 보단 마치 오래 지내던 사람들끼리 친분을 과시하는 것처럼 코믹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