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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아임 낫 데어] 밥 딜런에 대한 정답 없는 문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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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토드 헤인즈 감독, 2007년

1965년 7월 25일, 저항의 상징인 포크 음악을 위한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Newport Folk Festival)의 헤드라이너로 밥 딜런이 무대 위에 올라왔다. 그의 손에는 통기타가 아닌 전기 기타가 쥐어져 있었다. 관객들은 저항과 순수의 음악인 포크를 버리고 상업적인 락앤롤을 연주하는 밥 딜런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63년에 처음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올라왔을 때만 해도 그는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들을 통해 저항의 메시지를 관객과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노래에서 저항의 메시지를 읽으려고 하고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음악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 기타를 손에 들고 무대에 오른 65년의 이 공연은 세상을 향해 자신을 어떤 울타리 안에 가두려고 하지 말라는 선포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밥 딜런은 자신을 어떤 인물로 규정짓는 것을 싫어하는 진정한 예술가이다. 61년에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포크 음악에서부터 락앤롤과 팝과 가스펠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온 그의 삶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가장 쉬운 방법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데뷔 때부터 65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과 이후 오토바이 사고가 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일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는 정확히 이 시기의 밥 딜런에 대한 다큐멘터리 <노 디렉션 홈: 밥 딜런>을 만든 바 있다. 그는 하워드 휴즈의 이야기를 그린 <에비에이터>처럼 밥 딜런의 삶을 극영화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에비에이터>는 비록 실존인물의 삶을 다루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결국 마틴 스콜세지의 상상력을 통해 ‘재창조’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하워드 휴즈는 정신적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광인처럼 그려져 있지만, 사실 우리는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건 단지 여러 가지 단서들을 바탕으로 ‘추측’한 것에 불과하다. 어딘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예술가인 밥 딜런의 삶을 <에비에이터>처럼 만드는 것은 밥 딜런 스스로도 원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그의 삶에서 가장 드라마틱했던 순간을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은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토드 헤인즈는 밥 딜런의 삶을 극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였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바라본 밥 딜런의 삶을 여섯 명의 캐릭터로 만들어 때로는 사실을 재현하고 때로는 허구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의 삶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토드 헤인즈는 밥 딜런의 음악과 삶 속에서 그것을 영화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대충 여섯 가지로 정리한 다음 그것을 마구 뒤섞었다. 흑인 소년 우디(마커스 칼 프랭클린)의 이야기가 있고, 사람들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랭보(벤 위쇼)가 있고, 60년대를 풍미한 포크 가수였으나 지금은 목사가 된 잭(크리스찬 베일)의 다큐멘터리가 있으며, 잭을 연기한 배우 로비(히스 레저)의 가족 이야기가 있고, 영국 공연에서 겪게 되는 주드(케이트 블란쳇)의 이야기가 있고, 전설적인 무법자 빌리(리차드 기어)의 이야기가 있다. <아임 낫 데어>는 이 여섯 인물들의 이야기를 불친절하게 나열한다. 다행히도 영화는 이 불친절한 영화를 따라갈 수 잇는 유일한 방법, 곧 이 여섯 명이 곧 밥 딜런이라는 사실을 영화 처음에 가장 친절하게 보여준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서로 다른 여섯 인물을 통해 그려낼 수 있는 한 사람의 ‘밥 딜런’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밥 딜런은 거기에 ‘나’는 없다(I'm Not There)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있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밥 딜런이니까 말이다.

<아임 낫 데어>는 친절한 해설이 담긴 참고서라기보다는 골치 아픈 문제로 가득한 문제집과도 같은 영화다. 밥 딜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상 이 문제집이 쉽게 풀릴 리가 없다. 게다가 이 문제집에는 정해진 대답마저도 없다. 그러니까 스스로 참고서를 찾아가며 대답을 찾아내야 한다. 마틴 스콜세지의 <노 디렉션 홈: 밥 딜런>도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훌륭한 참고서는 지금까지 밥 딜런이 발표한 음반들일 것이다(씨네21 657호에서 정성일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길게 밥 딜런의 디스코그래피를 소개하는 것은 이 자체가 <아임 낫 데어>의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를 본 다음 이 풀 수 없는 문제집을 풀고 싶은 마음에 며칠째 그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삶을 생각하고 있다. ‘Blowin' in the Wind’와 ‘Like A Rolling Stone’의 묘한 차이가 느껴질 때, 영화 속 잭 롤린스와 주드 퀸의 모습이 묘하게 겹치며 조금씩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고 이해할 수 없다며 주저앉아 있는 당신, 당신도 나와 함께 영화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기를 권한다.



Bob Dylan with Joan Baez, Peter Paul & Mary and Freedom Singers
 - Blowin' In The Wind (Newport Folk Festival 1963)




Bob Dylan - Like a Rolling Stone (Newport Folk Festival,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