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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소년이여, 상상의 날개를 펼쳐라!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Son of Rambow)
가스 제닝스 감독, 2007년

가스 제닝스 감독의 상상력이 빚어낸 동화

누구나 유년 시절에는 우상을 동경한다. 소년, 소녀들의 동경은 TV나 만화 속 주인공에서 인기 가수, 연예인처럼 현실적인 인물로 바뀌어가고, 그럴수록 그들 역시 조금씩 성장해간다.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은 바로 우상을 동경하는 두 소년 윌과 리의 이야기다.


엄격한 종교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없는 윌은 너무도 외로운 소년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빈자리는 윌에게 채울 수 없는 허전함만을 남겼을 뿐이다. 윌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아무도 오지 않는 창고, 혹은 화장실에서 혼자만의 상상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 뿐이다. 그러나 외로움도 잠시, 윌도 마침내 우러러 볼 우상을 만나게 된다. 실베스타 스탤론이 주연한 영화 <람보>의 주인공 ‘람보’가 바로 그 우상이다. 윌은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람보의 아들(Son of rambow)’이라는 그림을 그리게 되고, 윌의 기발한 그림에 빠져버린 악동 리는 ‘람보의 아들’을 영화로 만들자는 당돌한 제안을 하게 된다. 그렇게 두 소년은 자신들의 우상을 영화로 만들며 한 걸음씩 성장해 나간다.

애초에 데뷔작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보다 먼저 준비했던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은 전작 못지않은 가스 제닝스 감독만의 소소한 상상력들이 곳곳에서 빛나는 영화다. 성장영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영화가 비범함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심의 순수함은 가스 제닝스의 상상력과의 화학작용을 통해 더욱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윌이 직접 그린 아기자기한 그림들, 그리고 두 소년이 우여곡절 속에서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그래서 왠지 더 흐뭇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가스 제닝스 감독은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80년대를 향한 뜨거운 향수를 영화에 담아내며 정겨운 분위기까지 더하고 있다. 영화 깊숙이 자리한 80년대에 대한 향수는 감독의 진심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영화에 진정성을 더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원작의 상상력에 일정 부분 기대었던 것과 달리, 오로지 감독만의 상상력으로 완성된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을 통해 가스 제닝스 감독은 자신의 연출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영화 속 소년들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부모의 역할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윌은 일찍 아버지를 잃었고, 리는 재혼한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 대신 형을 더욱 따른다. 그래서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왕따’를 자처한다. 너무 엄격한 집안이라 왕따가 된 윌과 너무 장난이 심해 왕따가 된 리가 함께 우정을 나누는 과정은 그래서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가스 제닝스 감독은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을 통해 유년 시절을 외롭게 보내야만 했던 모든 이들을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윌과 리 사이에서 함께 영화를 찍는 프랑스 교환 학생 디디에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가슴이 찡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우상을 동경한다. 오직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이다. ‘순수함을 위한 어른들을 안내서’라는 광고 문구처럼,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은 극장 밖을 나서는 순간 잠시나마 잊고 지내던 동심의 세계를 회상하게 만드는 영화다.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