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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씨네큐브

진심이 느껴지는 영화, 진심이 담긴 씨네토크 <시선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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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8일 저녁, 씨네큐브에서 <시선 1318>의 감독 다섯 분을 모신 씨네토크가 진행되었습니다. <오로라 공주>의 방은진 감독, <삼거리 극장>의 전계수 감독, <시월애>의 이현승 감독, <은하해방전선>의 윤성호 감독,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 감독들의 전작들로 볼 때 다섯 명 모두가 각기 다른 색깔의 감독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를 보겠노라고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영화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다섯 분의 감독을 한자리에 만나는 기회가 또 어디 있을까 싶은, 나름 희귀성을 지닌 씨네토크이기도 했죠. 영화 <시선 1318>은 단편 옴니버스 영화라는 한계, 게다가 십대 청소년이라는 한정적인 소재를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의외로 대중적인 매력과 진지함을 동시에 갖춘, 무엇보다도 진심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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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공부중> - 방은진 감독

하늘을 날고 싶은 아이들

원래 비행 청소년에 대한 에피소드를 만들려고 했었다는 방은진 감독은, 그 대신에 정말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아이들을 판타지로 그려내었습니다. 등수를 불문하고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평범한 아이들의 현실이 여중생들의 발랄한 뮤지컬 판타지로 펼쳐지는 <진주는 공부중>은 서열 매김에 대한 귀여운 전복을 꿈꾸며, 경쟁만을 강요하는 학교의 현실을 완곡하게 비판합니다. 발랄한 소녀들과 잘 어울리는 방준석 음악감독의 경쾌한 음악과,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활약 중인 남지현의 맑고 깨끗한 얼굴은 이 영화의 보너스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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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진 감독은 씨네큐브 관객들을 보면서, <진주는 공부중>은 여중생 또래의 친구들이 공감하기를 바라면서 만든 영화라고, 20~30대 이상 관객에게는 재미없는 영화일지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지만, 수험생 시절을 겪어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학교에나 전교 일등과 전교 꼴등이 있었을 테니까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중고등학생 친구들이 울고 웃으면서 보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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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앤.미> - 전계수 감독
모든 게 갑자기 시시해진 여자 아이와 가슴에 구멍이 뚫려버린 남자 아이

요즘 <킹콩을 들다>를 통해 주목받고 있는 "역도 소녀"의 원조 격인 작품입니다. 역도 특기생인 소영은 공부를 안 해도 진학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지만, 그 부러움은 소영이에게 외로움으로 다가옵니다. 역도가 아닌 다른 종목, 아니면 다른 공부를 해 보고도 싶지만, 이미 들어선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체육 특기생들의 답답함과 갑갑함이 소영 역을 맡은 권은수 양의 표정에 깊숙이 담겨 있습니다. 호주로 원치 않는 조기 유학을 떠나야 하는 철구와 함께 우연히 바닷가로 떠나게 되는 소영이를 바라보는 잔잔한 로드 무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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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의 막연하고 갑갑한 심정을 하루 동안의 방황으로 그려내고 싶었다는 전계수 감독은 전작과는 전혀 다른, 정적이고 사색적인 연출을 보여줍니다. 소영 역을 맡은 권은수 양은 무대 인사 때 보니까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인형같은 깜찍함이 매력인 기대주이고, 전계수 감독은 시를 사랑하는 순수한 문학 소년같은 면이 있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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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 이현승 감독
누구의 아기인지가 중요한가요? 우리끼리 잘 키울 수 있어요.

박보영(<과속 스캔들>)과 손은서(<여고괴담5-동반자살>)를 발굴해낸 영화이자, 정유미 양호선생님, 문성근 교감선생님 등의 카메오 배우들의 출연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게다가 기저귀와 우유병을 들고 등장하는 교복입은 박보영의 모습은 <과속 스캔들>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말로는 전인 교육을 부르짖지만, "대학에 가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는 용납할 수 없다"고 공언하는 선생님들과 "왜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에 다닐 순 없나요?" 라고 당돌하게 질문하는 아이들이 대비를 이루면서, 비혼모 문제를 단도직입적으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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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여성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서, 여성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던 이현승 감독은 이번에도 주저없이 여학생들의 문제에 촛점을 맞추셨다고 합니다. 영화 중에 "미혼모는 있는데, 왜 미혼부는 없는 걸까."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하지만, 관객 질문에서도 "남학생들이 아이를 키우는 설정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라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과속 스캔들>은 뒤늦게 책임을 통감하는 미혼부(차태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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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 윤성호 감독
"예비 88만원 세대들에 대한 날것의 몽타쥬"

다섯 작품 중 가장 아이들다운 영화이자, 재기발랄한 대사가 통통 튀는, 어찌 보면 UCC 같기도 한 깜찍한 영화입니다. 아이들의 연기와 대화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생생해서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등장하는 자막들은 은하계에서 날아온 것처럼 철학적인 위트로 넘칩니다. 비트박스와 자살괴담과 논술영역과 대통령 선거가 어우러지는 이 작품은 직접 보아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아직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과, 결국 기성세대의 안일함을 닮아가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오묘한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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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씨네21에서 박찬욱 감독이, "매체를 어떻게 갖고 놀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고 칭찬을 했던 윤성호 감독은 "옴니버스 영화 전문 감독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 (최근 <숏!숏!숏! 2009 : 황금시대>에도 참여) 너스레를 떨며 특유의 입담을 쏟아내었습니다. 인권 영화 프로젝트에 자신이 참여하게 되기를 예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으며, 참여하게 되면 영화 제작 스탭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그리려고 계획 중이었다더군요. 하지만, 주제가 청소년으로 결정되면서, 영화를 함께 만든 학생들과 관객들은 결과적으로 즐거운 선물을 선사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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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은> - 김태용 감독
달리는 것이 행복한 아이, 차은이

육상부가 해산되어 서울로 전학가야만 달리기를 계속할 수 있는 차은이는 무뚝뚝한 아빠, 필리핀에서 온 엄마, 천진난만한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도 예선대회에서 캐스팅되었다는 전수영 양은, 무심한 듯 서늘한 표정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장래가 촉망되는 실제 육상 선수입니다.

영화에서 운동화를 사다준 엄마에게 괜히 짜증부리는 사춘기 소녀의 모습은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숨어있는 후회와 맞닿아 있고,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도로를 달리는 차은이의 모습은 내 과거의 성장통을 넌지시 건드립니다. 새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 속에 담긴 한장면 한장면들이 얼마나 가슴 속 깊은 곳에 남는지는 말로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영화를 직접 보는 수 밖에는...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보석같은 명대사들도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섬세한 시선으로 빚어진 따뜻한 눈물과 아련한 감동을 직접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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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다문화 가정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김태용 감독은 단지 청소년기의 고민만이 아니라, 이주 여성, 다문화 가정, 그리고 그 주변의 친구들까지를 그 특유의 따스한 시각으로 담아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을 어떻게 품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한 듯한 감독은 아직 순수한 아이들조차 무심코 가지게 되는 "편견"의 문제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을 "선입견"을 가지고 단정적으로 바라보는 대신에, 순수하게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순간,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김태용 감독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전형적으로 "어떠할 것이다" 라고 무심코 단정짓곤 하는 이주 여성, 또는 성적 소수자, 또는 청소년들의 삶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 하는 것, 그것이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쉬운 발걸음을 시작하도록 해 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선 1318>은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그 첫 안내자가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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