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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반두비] 여고생과 이주노동자, 그 당돌한 만남


반두비 (Bandhobi)

신동일 감독, 2009년

시대의 공기와 함께 호흡하는 영화

이 영화, 당돌하다. 여고생과 이주노동자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반두비>는 풋풋한 로맨스인 동시에,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사회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반두비>는 무겁지 않다. 오히려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하면서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토록 귀엽고 통쾌한 <반두비>를 만든 장본인은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담아온 신동일 감독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예요. 현실이 좆같은데 어떻게 천사표 같은 영화들이 나올 수 있겠냐?” 데뷔작 <방문자>에서 주인공 호준의 입을 빌려 말했듯, 신동일 감독의 영화에는 모든 예술은 현실에서 비롯된다는 순수한 신념이 있다. 그의 영화는 현실과의 끈을 강하게 붙잡고 있다. 386세대와 여호와의 증인(<방문자>), 혹은 386세대 지식인과 서민(<나의 친구, 그의 아내>)이라는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담아낸 신동일 감독이 <반두비>에서 꺼내든 것은 여고생과 이주노동자다.


민서(백진희)는 가방에 당당히 촛불소녀의 배지를 달고 조중동을 보지 말자는 문구가 적힌 부채를 들고 다니는,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여고생이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친구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원어민 영어 과외를 받느라 정신없지만, 민서에게는 그 모든 것들도 그저 사치일 뿐이다. 우연히 버스에서 이주노동자 카림(마붑 알엄 펄럽)의 지갑을 주은 민서는 지갑에 들어 있는 몇 푼 안 되는 돈에 지갑을 훔치려다 끝내 카림에게 붙잡히고 만다. 하지만 민서는 가벼운 뽀뽀와 함께 소원 하나를 대신 들어주겠다는 말로 모든 일을 무마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민서와 카림은 다시 만나게 되고, 카림은 1년 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대신 받아달라는 부탁을 민서에게 한다.

<방문자>와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그랬듯, 이번에도 어김없이 신동일 감독은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직 세상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궁금한 소녀는 자신과 전혀 다른 문화와 관습을 지닌 청년에게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외롭게 지내던 청년 또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당돌한 소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영화는 둘의 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도 시선을 돌리며 영화 밖 현실을 영화 속에 녹여낸다. 소녀에게 무관심한 어른들,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변변치 못한 생활상,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사람들, 임금 체불에도 떳떳하기만 한 자본가, 나아가 미국인과 동남아인에 대한 한국인의 차별적 시각까지 영화는 담아내어 지금 한국 사회의 풍경들이 날카롭게 느껴질 정도다.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386세대를 내세워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했던 전작들과 달리 <반두비>는 보다 당면한 사회 문제를 드러내는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MB 수학’ ‘쥐새끼’ 등 현 정권에 대한 직설적인 화법을 통한 풍자가 전작들에 비해 더욱 늘어난 것이 그렇다. 아무래도 전작 <나의 친구, 그의 아내>와 <반두비> 사이에 존재하는 2년 남짓한 시간의 간극 때문일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과거로 역주행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 위기를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라는 말처럼 신동일 감독은 최근 2년 동안 급변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시대적 흐름을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반두비>는 시대의 공기와 함께 호흡하는 영화다. 한결 가벼우면서도 직접적으로 사회를 향해 날선 시선을 드리우는 것은 그만큼 지금 사회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피부, 색깔, 말은 모두 틀려도 우리는 자랑스러운 인간이다.” 민서와 카림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크라잉넛의 노래 가사를 통해 <반두비>는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든다. 스크린을 통해 지금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만큼 불편하고 힘든 것도 없지만, 한층 힘을 덜어낸 <반두비>는 그럼에도 현실을 통해 관객과 같이 대화하기를 바란다. 영화 속 민서와 카림이 주고받는 말처럼 조금만 마음을 연다면 모두가 따뜻한 세상이 될 거라고 <반두비>는 진심으로 말한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