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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언노운 우먼 (La Sconosciuta, 2006)


덜컹거리는 소음이 들려오는 음침한 공간 속에서 가면을 쓴 미지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한 남자에게 선택되기 바라듯 속옷차림으로 서 있는 정체불명의 여인들이 등장한 뒤 영화는 한 남자에게 선택된 여성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이 때 영화는 순간적인 교차편집을 통해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 안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여인과 윤락업소 같은 음침한 곳에서 손님에게 선택되길 바라는 여인이 동일인물임을 암시하는 초반부의 장면은 이 여인의 숨겨진 과거가 심상치 않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탈리아의 한 대도시에 도착한 이레나는 자신이 머물 집을 구한 뒤 그 곳에서 건너편의 집을 바라본다. 사실 도시에 도착한 뒤 집을 구하고 직장을 구하는 이레나의 행동은 얼핏 보면 당연한 듯이 보이지만 건너편의 집을 향한 그녀의 기묘한 집착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아파트의 관리인인 마테오에게 자신의 봉급의 일부를 주겠다는 제안까지 하면서 아파트에서 일하려고 하는 이레나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일자리를 절실히 원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건너편 아파트의 계단 청소부를 자처하는 그녀의 행동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아파트 청소부로 일하면서 이레나는 '아다처'라는 가족의 집을 기묘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다처 가족의 가정부로 일하는 지나와 친해지게 된 이레나는 어떻게든지 아다처 가족에게 접근하려 하지만 외국인 가정부를 꺼리는 아파트 주민들의 보수적인 분위기는 그녀의 목적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할 뿐이다. 결국 이레나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걸림돌을 끔찍하게 제거하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벌인다. 이처럼 '아더처'라는 가족의 집 안에 들어가기 위해 벌이는 이레나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그녀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레나의 복합적인 과거가 섞이는 교차편집을 통해 그녀의 집착적인 행동의 동기를 간접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그녀의 숨겨진 과거의 비극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레나가 주변에서 겪는 에피소드 속에는 항상 그녀의 과거가 플래쉬백으로 삽입된다. 현재의 모습 속에 삽입된 과거의 기억들은 순간적인 영상처럼 지나가면서 마치 퍼즐의 조각들을 군데 군데 뿌려놓은 느낌이 든다. 영화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이레나의 행동 사이에 들어가 있는 과거의 모습들을 조합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삶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순차적인 장면 속에 삽입된 순간적인 플래쉬백들은 이레나의 다양한 감정들을 드러내는 효과를 부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도둑으로 오해를 받은 이레나의 몸을 수색하기 위해 남자 직원이 그녀의 몸을 수색하는 장면 속에 그녀의 과거의 장면들을 순간적으로 삽입하고 있는데, 남성들에게 무자비한 폭력과 능욕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과거의 이레나의 모습이 현재의 이레나의 곤혹스런 감정으로 자연히 유도된다. 매춘부로 일하며 혹사당하는 이레나의 불행한 과거들이 순간마다 드러나는 장면 이후 현재의 이레나 앞에 벌어지는 현상들은 이레나를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지아란 노래를 부르며 그녀를 능욕하던 험상궂은 남자의 모습이 드러난 뒤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동일한 제목의 노래는 이레나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험상궂은 남자의 과거의 기억과 겹치면서 두려워하는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이레나의 모습이 이어지는 장면들을 통해 그녀가 무언가에 쫓기듯이 살아가고 있는 불행한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이레나가 가정부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여전히 미스테리적인 의문을 남기며 진행한다. 비밀 금고의 위치를 찾아내려고 애를 쓰는 이레나가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 영화는 그녀가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를 찾으려고 했음을 드러낸다. 여전히 그녀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미스테리를 남기지만 영화는 아다처 가족의 외동딸인 떼아가 아레나와 가까워지는 에피소드들을 삽입하면서 소외받으며 살아온 두 여성이 마치 부모와 자식처럼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떼아는 겉으로는 행복한 아이이지만 서로 별거한 체 따로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을 울먹이며 지켜보는 쓸쓸한 아이이다. 게다가 한 번 넘어지면 일어서지 못한 체 피를 흘리고 마는 희귀 질병을 앓는 연약한 기질을 가져서 항상 또래 아이들의 장난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연약한 존재이다. 떼아와 이레나의 모습은 마치 상전을 다루는 시녀의 모습처럼 신분적인 질서의 느낌이 들지만 떼아에 대한 이레나의 적극적인 보살핌은 아이가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어 간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저항하지 못한 체 눈물을 흘리는 떼아에게 저항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의 몸을 묶은 뒤 반복해서 쓰러뜨리는 장면은 잔혹하고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이레나의 의도를 깨닫는 순간 떼아는 자신에게 행한 이레나의 행동이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다. (이 장면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와일드 차일드'에서 아이에게 가한 벌을 통해 스스로 저항을 깨닫게 하는 이타르의 교육법이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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