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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무용 (無用,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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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는 무용(舞踊)이 아니라 쓸모 없다는 뜻의 무용(無用)이라는 것, 그리고 옷을 소재로 중국의 변화와 현재의 모습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라는 정도를 알고 봤습니다. 이런 정도의 사전 정보는 스포일러가 아니라 영화의 실제 내용과 전혀 다른 엉뚱한 기대를 하지 않게 해주는 권장 사항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지아 장커(賈 樟柯)의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이들 가운데 이런 정도의 기초 정보도 없이 왔다가 당황하시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요. 왜 춤은 안추고 다들 옷만 만들고 앉아있는겨? 스폰지하우스에서 저와 같은 줄에 앉으셨던 한 분이 중간에 나가셨어요. 춤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오셨더라도 <무용>은 대중 영화의 기초 미덕 몇 가지를 갖추고 있지 않은 작품이기에 중간에 일어서는 분이 계실 법도 한 작품입니다. 다큐멘터리라고는 하지만 디지털로만 촬영한 화면과 다소 조악한 음향이 상당한 이질감을 줄 뿐만 아니라 그 흔한 나레이션도 없고 영화가 담고 있는 피사체들도 뭐 그리 즐거운 볼거리가 되어주지를 않습니다. 개별 영화의 내용과 주제 뿐만 아니라 외형과 형식에 관한 요구수준에 있어서도 개인차는 적지가 않습니다. 제 경우 이해와 공감을 할만한 내용과 그에 걸맞는 형식적 일관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기술적인 수준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편임을 미리 밝힙니다.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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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나레이션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어떠한 견해나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고 있는 <무용>은 그러나 현대화된 대량 의류 생산 공장과 전위적인 컨셉의 파리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디자이너, 그리고 다시 탄광촌 사람들의 남루한 모습을 차례로 배치하면서 옷이라는 소재를 통해 중국의 현재 진행형과 이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는 점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게 된 이 시점에 중국은 특히 싸구려 의류의 대표 브랜드, Made in China로 멸시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중국 인민들이 공장 노동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도시에서는 루이뷔통이나 프라다와 같은 수입 제품들이 대형 상점을 열어놓고 부자들과 놀아나고 있고요. 이런 시점에 마 케와 같은 젊은 디자이너가 등장하여 전위적인 컨셉의 브랜드 런칭쇼를 파리에서 개최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무용>에 담긴 중국의 현재입니다.

지아 장커는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탄광촌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전위 미술 작품들을 방불케했던 파리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마 케가 작품 구상을 위한 여행을 떠날 때 이를 뒤쫓아 가는 듯 했던 카메라는 길 위에 서 있던 촌로에게 시선을 고정합니다. 마 케의 수입 SUV 차량은 제 갈 길을 계속 가버리고 카메라는 비닐 봉다리 하나 들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촌로를 따라가 탄광촌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보여주고자 했던 진정한 가치를 지닌 의복의 모습이 파리의 패션쇼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인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 현장에 이미 있더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마 케의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는 옷을 만드는 기초 작업은 자신이 하지만 나머지 완성되는 과정은 흙에게 맡긴다는 것이었는데 하루종일 흙 속에 파묻혀 일하고 온 몸에 묻은 석탄 먼지를 씻어내는 광부들의 몸과 작업복들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냐고 지아 장커는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듯 합니다. 바지 한벌 수선하는 데에 2원이면 되는 가난한 촌동네이고 벌이가 좋지 않아 탄광 일을 해야 하는 재단사가 살고 있는 곳이지만 파리의 패션 전문가들이 감탄하며 놀라워했던 그 의복들은 베이징이나 상하이, 광조우의 도심이 아닌 바로 그곳에 있더라는 얘깁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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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적인 수준과 완성도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기술 수준은 자본을 많이 들이면 어느 작품이나 마음 먹은 대로 높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기술적 완성도는 기술 수준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본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개별 작품 내 일관성입니다. 아무리 최고 수준의 컴퓨터 그래픽을 쳐다발라도 기술적인 완성도가 고르지 못하면 관객 입장에서는 일단 짜증부터 내게 됩니다. 내러티브의 구성이나 편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래서 연출의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작업하는 독립영화 작가들과 UCC 제작자들이 반드시 유념해주셔야 할 부분입니다. 이게 안되어 있는 영화를 '진정성'이라는 말 하나로 무작정 격려하고 옹호하기가 일반 유료관객 입장에서는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2) 지아 장커의 발견이 중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의 일상을 이끌어 가고 있는 가치 체계에 의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치,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비단 예술가들만의 영역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올바르게 사는 방법에 대해서도 제발 생각을 좀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대통령 선거와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만이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