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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유리의 날 _ 차갑게만 변해가는 이야기

ⓒ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유리의 날 (Yuri's Day, Yuryev Den, 2008)

차갑게만 변해가는 이야기


이번 제 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가장 먼저 관람한 작품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연출한 러시아 영화 <유리의 날>이었다. 가끔 영화제에서는 영화를 선택할 때 정말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관람작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유리의 날> 역시 미스테리라는 점, 그리고 평소에 보기 힘든 러시아 영화라는 점이 영화를 보기 전 정보의 고작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조금은 후덥찌근한 날씨를 달래며 보기 시작한 영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눈 덮인 영상을 배경으로, 영상 만큼이나 차가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영화의 주인공인 오페라 여자 가수는 아들과 고향으로 보이는 마음에 도착했다가 어느 순간 아들을 잃어버리고 만다. 도대체 왜 아들이 사라졌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는다. 사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처음 얻었을 때는 미스테리나 스릴러 장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분명 아들이 실종된 사건 자체는 미스테리한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포인트는 사라져 버린 아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큰 변화를 겪게 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보는 편이 더 맞을 듯 싶다.


크세니야 라포포트가 연기한 주인공의 변화는 실로 놀랍다. 영화에 시종일관 집중하고 있음에도 과연 초반 오페라 가수로서 품위있던 모습의 그 여자가 중반 이후의 그 여자와 같은 인물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정말로 중간에 곰곰히 따져보기도 했다) 사건을 겪으면서 이 여성은 아주 심한 변화를 겪게 된다. 나중에 가서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그 이유마저 완전히 잊어버린 듯한데, 이쯤 되면 아들을 찾고 못 찾고는 벌써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반대로 미스테리 영화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은 편이다. 화면 구성이나 극의 구성은 굉장히 무언가가 나올 듯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움츠리고 있지만 영화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렇게 마무리 되는 편이다. 미스테리로 보지 않으려 했음에도 이런 의견을 얘기하게 된 것은,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불러일으킬만한 아주 매력적인 영상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눈 덮인 설원과 고립되어 있는 마을이라는 설정은 그런 요소를 더욱 증폭시키기에 충분했고, 장면 자체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여자 주인공을 연기한 크세니야 라포포트는 최근 개봉한 <언노운 우먼>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유리의 날>에서의 연기는 어느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해도 크게 손색이 없을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어미니와 여성의 경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의 특성을 잘 표현해 내고 있으며, 오페라 가수 역할로서 노래하는 장면의 약간 어색한 립싱크 조차 크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