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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Grandaddy - The Nature Anthem (from <나무없는 산>)



"산으로 올라가고 싶어. 산 뒤로 내려오고 싶어. 강에서 헤엄치고 햇빛 쬐고 싶어. 모두에게 잘하고 싶어." 애타게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소녀들이 노래를 부르며 산 길을 걸어간다. 아마 엄마는 다시는 소녀들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녀들은 이제 외롭지 않다. 이제 엄마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귤 하나, 고구마 하나 챙겨주는 게 전부인, 구멍 난 신발을 신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할머니가 있기에 조금은 따뜻해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김소영 감독의 <나무없는 산>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희망적인 메시지로 끝난다. 물론 그 희망도 아주 소박한 희망일 뿐이지만 말이다.

데뷔작 <방황의 날들>에서 뉴욕 출신 인디 록 밴드 아소비 섹수(Asobi Seksu)의 음악들을 영화 곳곳에서 들려줬던 김소영 감독은 두 번째 장편 <나무없는 산>에서는 최대한 음악을 삼가고 대신 주인공인 진과 빈 두 자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대신 엔딩 크레딧에 이르러서야 아소비 섹수의 음악을 들려주며 김소영 감독이 아소비 섹수의 팬이 아닐까 하는 심증을 다시 한 번 갖게 만든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엔딩 크레딧에 아소비 섹수의 노래만 나와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거기에는 그랜대디의 노래도 적혀 있다. 바로 영화의 마지막 소녀들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그랜대디의 노래였던 것.

소녀들이 부른 노래의 원곡은 그랜대디가 2004년에 발표한 컴필레이션 음반 <Below the Radio>에 수록된 'The Nature Anthem'. 뮤직비디오만 봐도 알겠지만 그랜대디의 감성이 은근히 동요와도 닿아 있음을 알게 해주는 사랑스러운 노래다. 한국 배우와 스탭들을 기용해 한국에서 촬영한, 영화 내내 한국적이기 그지 없는 <나무없는 산>이 유일하게 감독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부분은 바로 음악이 아닐까 싶다. 그랜대디의 노래를 한국어로 번안해 부르게 하다니, 김소영 감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마치 이 영화에 감춰진 비밀을 혼자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에 시사회장을 나서면서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설렜다.

그랜대디의 원곡도 참 좋지만 <나무없는 산>의 두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이건 영화를 봐야만 알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생각도 나고,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도 생각나고, 동시에 김소영 감독의 데뷔작 <방황의 날들>도 연상케 하는 <나무없는 산>은 김소영 감독을 왜 주목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물론 선댄스 취향의 영화들을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의 탓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무튼 신파가 아닌 사실적인 연출로도 서정적인 감성을 만들어내는 김소영 감독의 연출력이 빛나는< 나무없는 산>은 오는 27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예고편에 나오는 음악의 주인공은 바로 아소비 섹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