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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본격추리(2)


에도가와 란포의 전단편집 중 2권인 '본격추리2'는 그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구현된 추리 소설집이다. 1,3권의 단편들의 만족도가 천차만별인데 반해 비교적 장문으로 구성된 2편은 그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높은 추리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거울 속에 비춰진 살인자의 모습을 통해 살인사건을 묘사하는 '호반정 살인사건'이나 약혼녀의 죽음으로 곤란에 처한 친구를 돕는 추리소설 작가의 활약을 담은 '악귀', 흔적없이 사라진 절도범의 정체를 편지를 통해 밝히는 '호리코시 수사1과장 귀하', 의문스런 스토커에게 고통받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음울한 짐승' 등 그의 독특한 상상력이 발휘된 추리소설들이 흥미롭다.

한편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이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명탐정을 등장시키듯이, 에도가와 란포는 아케치 코고로 라는 명탐정을 통해 완벽해보이는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혀낸다. 7개의 단편 중 3개의 작품은 아케치 코고로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에도가와 란포는 제 3자의 시선에서 아케치 코고로의 활약을 묘사하고 있는데, 화자의 눈에 비춰진 그의 추리 방식은 일반적인 추리소설 속의 명탐정과 다른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아케치는 범죄자가 범인의 죄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보다는 오히려 범죄자와 일대일로 대면하면서 그가 벌인 범행방법을 진술한다. 정통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모아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히기도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살인 방법을 범죄자에게 드러냄으로써 살인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범인의 범죄수법을 논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그를 심판하기 보다는 범인의 심리를 압박함으로써 스스로 범죄를 시인하도록 하는 아케치 코고로의 추리 방식이 매력있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들의 매력은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인 추리소설의 경우 일반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명탐정같은 비범한 인물이 단서들을 찾아가며 범인을 추적하는데 반해,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들은 범죄자의 내면을 통해 완벽범죄를 시도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다. 하지만 범죄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가 들통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예를 들어 '지붕 속 산책자'나 '달과 장갑'의 범죄자는 살인을 저지른 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활하려 하지만 진실을 알고자 찾아온 아케치 코고로같은 비범한 인물에 의해 두려움이 마음 속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케치 코고로 같은 인물이 그들의 범죄 수법을 연상시키는 행동을 하면 할수록 그들은 자신의 범죄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고통스러워 하며 자신도 모르게 범죄 사실을 시인하는 행동을 저지르고 만다. 마음 속의 두려움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내면을 묘사한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 에도가와 란포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의 음울한 욕망을 묘사하고 있다. 거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훔쳐보는 인물(호반정 사건), 지붕 위를 드나들며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인물(지붕 속 산보자), 그리고 채찍을 휘두르면서 가학적인 성적 쾌감을 얻으려는 연인들(음울한 짐승) 등의 모습은 인간 내면 속에 숨겨진 호기심이나 욕망을 왜곡된 방식으로 구현하는 인간의 욕망을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이들의 어두운 욕망은 끊을 수 없는 집착으로 이어지고 끝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요소가 되어버린다.

7개의 단편 중 마지막 작품인 '우울한 짐승'은 인간의 어두운 욕망으로 인해 파멸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걸작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나'는 시즈코 부인이 오에 슌데이라는 추리 소설 작가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구현한 작품들을 서술했다는 오에 슌데이라는 인물은 마치 에도가와 란포 자신을 연상시키는데, 그의 범행수법 또한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이 연상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기 자신의 작품들을 종합하면서 의문의 살인사건의 내막을 밝히는 구성이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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