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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키사라기 미키짱] 아이돌은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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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라기 미키짱 (キサラギ)
사토 유이치 감독, 2007년

각본, 연출, 캐스팅의 완벽한 조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봐야 더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아이돌을 기억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다섯 남자들의 하루 동안의 해프닝을 그린 <키사라기 미키짱>이 그런 영화다.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차례차례 드러나는 다섯 남자의 비밀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전개되는 스토리는 종잡을 수 없는 결말로 이어지며 더 없이 코믹한 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극장에 들어섰다 예측불허의 웃음과 재미를 안고 극장 밖을 나설 영화다.


영화는 아이돌 키사라기 미키의 사망 1주기를 맞아 그녀의 게시판에서 알게 된 다섯 명의 팬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시작된다. 키사라기 미키 최고의 팬을 자처하는 이에모토(오구리 슌), 수다스런 팬시점 직원 스네이크(코이데 케이스케), 키사라기 미키의 죽음을 경건하게 기억하고 싶어 하는 오다 유지(유스케 산타마리아), 시골에서 올라온 농부 야스오(츠카지 무가), 사실은 중년남이면서 ‘딸기소녀’라는 뜻의 닉네임을 써온 이치고무스메(카가와 테루유키)가 바로 그들. 오프라인에서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다섯 남자가, 그것도 폐쇄된 작은 방에 모였으니 분위기가 편할 리 만무하다. 영화는 그 낯선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시작부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공통의 관심사를 찾는 것. 그래서 이들 다섯 명도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키사라기 미키에 대한 각자의 추억들을 털어놓는다. 키사라기 미키 최고의 팬답게 데뷔 전 사진집과 친필로 쓴 편지 등 레어 아이템을 소장하고 있는 이에모토의 ‘키사라기 미키 콜렉션’은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산다. 어색함을 벗어던지고 어느 새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다섯 남자.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유난히 점잔을 빼던 오다 유지의 갑작스런 발언으로 분위기는 급변한다. 키사라기 미키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된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섯 남자들이 모인 공간은 어느새 경찰서 취조실 마냥 미스터리한 곳으로 변해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이에모토를 제외한 네 남자가 사실은 키사라기 미키의 팬이 아닌, 개인적으로 키사라기 미키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토리는 점점 예상치 못한 전개로 나아간다.


매 순간마다 허를 찌르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데는 각본의 힘이 크다. <올웨이즈- 삼번가의 석양>으로 일본아카데미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은 각본가 코자와 료타는 탄탄한 플롯을 통해 일면 억지스러우면서도 묘하게 들어맞는 다섯 남자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나간다. 또한 폐쇄된 공간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조절하면서 이를 다양한 앵글로 담아내는 사토 유이치 감독의 연출 또한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위기에서 영화를 구해낸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108분의 러닝타임을 완벽하게 이끌고 가는 다섯 배우의 앙상블이다. 냉철한 이미지의 오구리 슌, 지나치게 진지한 유스케 산타마리아, 쉬도 때도 없이 촐랑대는 코이데 케이스케, 상황에 적응 못하며 어색함을 자아내는 츠카지 무가, 그리고 <도쿄!>에 이어 다시 한 번 오타쿠스런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카가와 테루유키까지 각자 나름의 개성으로 가득한 배우들의 완벽한 캐스팅은 영화를 끝까지 몰입하며 볼 수 있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키사라기 미키의 살해 의혹과 함께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키사라기 미키짱>의 나머지 이야기들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는 편이 낫다. 다섯 남자들이 꺼내놓는 각자의 비밀들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생겨나는 그 웃음은 말 그대로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눈으로 보며 그 재미를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낄낄대게 만드는 <키사라기 미키짱>이지만, 적어도 영화가 끝나는 순간만큼은 가슴이 벅차오를지도 모른다. 하루 동안 다섯 남자가 겪은 해프닝은 결국 ‘아이돌을 향한 변치 않는 팬심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의외의 감동을 전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가슴 속에 잊지 못할 아이돌 한 명 쯤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섯 남자는 다시 한 번 키사라기 미키를 향한 자신들의 변치 않는 사랑을 확인하며 작은 방을 떠난다. 그렇게 아이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 있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