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heater

맨 온 와이어 _ 한 편의 시와 같은 찰나의 여정



맨 온 와이어 (Man On Wire, 2008)

한 편의 시와 같은 찰나의 여정


단연코 이 영화 <맨 온 와이어>는 저 포스터 한 장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형식이 다큐멘터리인지, 저것이 CG를 통해 만들어진 장면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그냥 저 이미지는 너무도 아름다웠었다. 사실 <맨 온 와이어>는 2009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비롯해 많은 영화제에서 많은 상들을 수상하여 더 많은 관객들에게 알려진 작품인데, 이런 많은 수상 수식어로는 다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맨 온 와이어>의 이야기는 실화여서 감동적이었고, 그 어느 작품보다 '극적인' 다큐멘터리였다.





이 작품은 곡예사인 필리페 페티 (Philippe Petit)가 1976년 8월 7일,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쌍뚱이 빌딩 사이를 외줄로 연결하여 그 위에서 펼친 퍼포먼스와 이 퍼포먼스가 실행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들을 담은 실화다. 일반적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느끼는 (그러니까 실화라서 더욱 감동을 느끼는) 감동과 이 작품이 실화라서 주는 감동의 종류는 분명 조금 다르다.


일 단 <맨 온 와이어>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실화를 바탕으로 인터뷰와 재연 장면, 실제 촬영된 장면들로 이뤄진 이 작품이 몹시도 극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찌보면 이 작품은 좀 더 본격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 특징적인 점이라면 연기자들의 재연으로 구성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적절한 어둠과 그림자를 통해 이 부분을 실제와 혼동하도록 자연스럽게 배치한 점에서 연출의 재치가 느껴졌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이 '재연'이다 라는 점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한데, 이 재연부분의 극적인 요소가 실화라는 다큐적인 부분의 감성을 해치기는 커녕 돕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이것이 마치 거대한 극영화가 아닐까 문득문득 생각하게 될 정도로 (일종의 <트루먼 쇼>처럼), 영화의 주요 사건이 되는 쌍둥이 빌딩 퍼포먼스를 앞둔 시점 뿐만 아니라, 그와 그의 동료들이 처음 만나 뜻을 모으던 때의 이야기를 비롯해, 이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서사할 수 있을 정도의 영상 자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 영상들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자료가 되는데, 이 부분이 이 작품을 더욱 극적인 영화로 느껴지게 했다 (아련한 흑백 필름의 질감은 흡사 안톤 코르빈의 <컨트롤>을 떠올리게 했다).





이 작품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곡예의 주인공 필리페 페티일 것이다. 그가 너무도 극적인 퍼포먼스를 펼친 것 때문이 아니라, 곡예 만큼이나 이야기 꾼으로서의 재능이 충만한 그 때문이었다. <맨 온 와이어>에 삽입된 그의 인터뷰를 보면 '과연 저렇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외줄 위에서 오랫동안 외로움을 홀로 견뎠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물론 이 부분은 영화의 후반부를 보며 달리 깨달을 수 있었는데, 줄 위의 그에게 '외로움'은 없었다). 손짓, 발짓, 몸짓을 써가며 자신의 무용담을 보기 좋게 늘어놓는 그의 리드에 따라 재연 장면들은 줄을 서듯 따라온다. 너무 열정적으로 스크린 뒤의 관객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필리페의 눈빛에서는, 단순한 무용담이 아니라 내가 느낀 특별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게 해주고 싶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그의 열띤 화법은 적어도 한 명의 관객에게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흥미로웠던 또 다른 지점은, 대부분 쌍둥이 빌딩을 건넌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다면 그 사건 자체에 집중할 수 밖에는 없을텐데, 이 영화는 여기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핏보면 우리가 (어쩌면) 쉽게 접하는 단 한 장면(빌딩 사이를 건너는)이 사실은 많은 과정들을 거쳐 이뤄낸 산물이다 라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듯도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과정에는 같은 뜻으로 모인 젊은이들 사이의 갈등과 성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반대로 이 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그러니까 극적으로 묘사하려 했다면 영화는 좀 더 일반적인 의미의 극적요소가 가미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감독인 제임스 마쉬는 이런 우를 범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설명하되 어느 한 순간 아무렇지 않게 무심한 듯 빠져나오면서 이야기의 결말을 더 묘하게 마무리 짓고 있다.

사실 한참 이야기를 잘 들어오던 청자의 입장에서 궁금해지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순수한 이상만을 꿈꾸며 함께 달려왔던 젊은이들이 목표를 이루고나서는 왜 그렇게 산화되듯 쉽게 사그라든 것인지, 연인 사이였던 필리페와 그녀의 이별은 더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영화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다는 말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인데, 어차피 안알려줄 것이었다면 없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이들의 이런 갈등 요소를 언급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영화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영화의 화법은 잘 들여다보면 필리페와 그의 친구들이 갔던 길과도 많이 닮아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우여곡절을 지나 필리페가 드디어 쌍둥이 빌딩 사이를 외줄을 타고 건너던 순간의 장면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니 황홀했다. 진부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시간이 멈춘듯 한 경험을 이 장면을 통해 할 수 있었고, 그 어느 장면보다 평화로워 보였다. 이 표현이 100% 맞거나 아주 틀린 표현이 동시에 될지도 모르겠지만, <맨 온 와이어>라는 작품은 마치 이 한 장면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랄까, 너무도 위험천만한 순간이지만 조금의 불안감이나 위험함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이었으며, 곡예라는 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감성적인 순간이었다.

빌딩 사이을 위태롭게 건너는 장면은 스포츠적인 도전으로 그려질 수도 있겠지만, <맨 온 와이어>는 도전인 동시에 도전이 아닌 것으로 그려냈다. 도전이라는 것은 목표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필리페의 도전에는 목표(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 사이를 건너는 것)는 있지만, 의도는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역시 '왜?'라는 부분이다.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외줄타기를 한거죠?'라는 질문에 필리페는 아무 이유없다고 답한다. 사실 이 장면에서 소름은 더 돋았다. 많은 예술가들이 각자의 의도와 메시지를 전하려 예술 작품을 만들지만, 필리페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예술'이라는 본연의 가치에 가장 근접해 있으면서도,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한 곳이 단숨에 탁 트인듯한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었다. 무언가 심오한 메시지를 들려줄 줄 알았던 그에게서 이런 답변이 돌아왔을 때 불현듯 나를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스릴러 거장의 작품을 보는 듯한 범죄영화적 분위기를 이끄는 연출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또 다른 요소는 마이클 니먼이 작곡한 영화 음악이다. 이 영화를 다큐이면서도 극영화로, 극영화이면서도 다큐멘터리로 만든 데에는 마이클 니먼의 음악이 크게 작용했다.

맨 처음 이야기했듯이 <맨 온 와이어>는 압도적인 포스터에 끌렸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더 압도적인 찰나와 예술적 가치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