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heater

[클래스] 교실과 계급, 진심을 공유할 수 없는 벽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클래스 (Entre les murs)

로랑 캉테 감독, 2008년

리얼리티를 통해 현실을 끌어당기다

새 학기가 시작된다. 한 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눈 선생님들은 앞으로 자신이 맡을 학생들의 명단을 보며 정보를 주고받는다. 방학을 마치고 교실에 모인 학생들은 여전히 떠들썩하다. 학교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 하지만 <클래스>는 여느 학원물처럼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훈훈한 관계나 풋풋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다만, 이 평범한 풍경을 멀찍이 바라보며 교실과 학교의 속살을 샅샅이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클래스>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실제 교사 출신 작가 프랑수아 베고도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에서 출발한 영화지만, 연출을 맡은 로랑 캉테 감독은 소설의 영화화보다는 소설 속 교실의 풍경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현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프랑수아 베고도를 영화 주인공 마랭으로 캐스팅한 것은 물론,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실제 학생들을 실명으로 등장시키며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한다. 각본도 없고 연기의 방향도 정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즉흥적인 장면들이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철저하게 연출된 장면들이다. 그렇게 <클래스>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영화 속에 현실을 강하게 밀착시키고 있다.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영화임에도 <클래스>에는 극영화 못지않은 흥미로움이 존재한다. 교실에서 끊이지 않는 토론을 펼치는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물론, 선생님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갈등, 학부모와 선생님, 학생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까지 <클래스>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차곡차곡 담는다. 진심을 공유하지 못하는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교사의 입장에서도 각자의 가치관을 공유하지 못하는 선생님들, 인종에 따라 친구를 대하는 학생들의 모습 등은 교육에 대해, 학교에 대해, 나아가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클래스>의 프랑스 제목은 프랑수아 베고도의 원작에서 빌린 ‘벽 사이에서(Entre les murs)’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프랑스 제목보다는 ‘클래스’라는 영어 제목이 영화와 더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영화가 교실(class)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계급(class)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그린 <클래스>에서 단연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교실에서 펼쳐지는 마랭과 학생들의 ‘맞짱토론’이다.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마랭에게 학생들은 자꾸만 딴죽을 건다. 왜 굳이 예문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을 백인 이름으로 쓰냐며 불만을 표시하고, 잘난 척하는 부르주아들이나 쓰는 가정법을 왜 배워야 하는 건지 의문을 던진다. 아프리카, 아랍, 아시아 등 다양한 인종이 모인 교실 안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계급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 자신들이 부르주아는 아니라는 사실을, 프랑스 사회 내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랭과 학생들이 끊임없는 토론을 벌일 수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럼에도 서로 다른 계급을 지녔기에 아무리 진심을 공유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는 서늘한 진실을 <클래스>는 넌지시 이야기한다.

새 학기의 시작으로 막을 연 <클래스>는 새 학기가 끝나는 순간 당연하다는 듯 막을 내린다. 학교라는 공간에 내제된 다양한 갈등들은 한 학기 내내 다양한 사건들로 터져 나온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도 학교에 존재하는 갈등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클래스>는 스스로 답을 내리지 않고 그 답을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토록 치열하게 토론하고 때로는 서로의 감정까지 상하게 했던 마랭과 학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이 축구를 하며 학기의 마지막을 기념한다. 텅 빈 교실에는 어지럽게 널린 책상과 의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혼자서 더 많은 걸 공부했다는 학생이 있고, 한 학기 동안 무얼 배웠는지 모르겠다며 울상을 짓는 학생도 있다. 문장 그대로 ‘영화 같은’ 결말은 <클래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이것이 진짜 현실이라고 덤덤하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