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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마보드 세라지, <테헤란의 지붕>

최근 영상매체로 만들어진 '페르세폴리스'나 '연을 쫓는 아이'같은 소설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세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힘없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으며, 그 현실 속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작가의 경험담은 많은 공감을 자아내게 한다. '테헤란의 지붕' 역시 앞에서 언급한 소설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 소설이다. 73년 당시 파샤와 아메드의 우정을 통해 소년들의 성장담을 흐뭇하게 묘사하면서도, 한 소년의 죄책감을 통해 어두운 역사의 비극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도입부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독백 장면을 통해 이야기를 플래쉬백 하듯이 전개한다는 점이다. 1975년 겨울 한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주인공의 내면을 그린 다음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인 1974년 여름으로 되돌아가는 책의 구성은 여름 날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키워가던 파샤가 1년이 지난 겨울날 왜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홀로 고통스러워 하는지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파샤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계기는 후반부의 충격적인 사건이 드러나는 순간에야 그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에 빠르게 책을 읽어가며 그의 고통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게 된다.

파샤는 자신의 멘토와 같은 남자인 '닥터'에 대한 존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아내가 될 여인인 자리를 짝사랑하는 아이러니한 처지에 놓여 있다. 닥터란 별명을 가진 청년은 책을 좋아하는 파샤가 존경할만큼 많은 지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부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피력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은 닥터를 통해 이란이 처해있는 현실을 이해하게 되고 그처럼 독재에 대해 저항하는 용기를 얻게 된다. 닥터는 파샤에게 고귀한 사람이 갖고 있는 '그것'이란 내면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주인공을 칭찬하지만, 파샤는 그런 닥터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그의 약혼녀인 자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자책한다.

비밀 경찰을 통해 국왕에 대해 반대하는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탄압하는 현실에 개탄하던 닥터는 파샤에게 이제 그 때가 왔다는 말만 남긴 체 시골로 내려간다. 닥터가 사라진 후 아메드와 파히메 커플과 함께 자리의 집에 방문한 파샤는 조금씩 자리와 가까워지지만 사랑이라는 본능과 닥터에 대한 존경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닥터의 집을 향해 찾아온 비밀 경찰 무리들을 지붕에서 바라본 파샤는 그들이 닥터를 구속하기 위해 찾아온 것임을 깨닫는다. 닥터가 집 안으로 숨어든 장면을 목격한 파샤는 지붕 아래서 그를 바라본 비밀 경찰에게 닥터의 위치를 노출하고 만다. 본의 아니게 닥터를 비밀 경찰에게 넘겨주게 되버린 파샤는 이 때부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어느 날 총알값을 받으러 온 비밀 경찰들의 횡포를 통해 파샤는 닥터의 죽음을 알게 된다. 현실에 대항한 용기있는 지식인이었던 닥터의 죽음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다.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검은 상복을 입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으며 그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인물들을 감시하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그저 침묵으로 그 현실을 이겨내려고 한다. 닥터의 죽음을 계기로 파샤는 부당한 현실에 대해 조금이나마 대항하는 투사적인 기질을 실천한다. 닥터가 피를 흘렀던 거리에 그의 의지를 기리는 빨간 장미 묘묙을 심고, 학교 안에서 학생들 위에 군림하려는 선생들에게 저항하는 파샤와 아메드의 행동은 소심하지만 거대한 장벽같은 팔레비 왕조의 폭압에 대항하는 소년들의 용기가 드러난다.

국왕의 기념일을 앞둔 어느 날 파샤는 자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자리는 주변의 눈길을 의식하면서도 그의 진심을 받아들인다. 함께 국왕 기념일을 구경하자는 자리의 제안을 받아들인 파샤는 뒤에 이어질 비극에 아연실색하게 된다. 이 비극이 닥쳐오는 순간이 등장하면서 소설은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파샤의 정신병의 원인을 밝힌다. 정신병원에서의 몽환적인 꿈을 통해 자신의 죄책감과 상실감 속에서 괴로워 하던 파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보다 넓은 시선에서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허름한 닥터의 무덤 앞에 선 파샤는 그에게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명예, 우정, 사랑, 자신이 가진 전부를 주는 것, 일신의 평화를 위해 눈 감고 귀 막지 않고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사는 것... 그 모든 걸 합쳐놓은 게 '그것'이죠. 그렇죠? 난 '그것'을 가진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으니 행복한 거죠. (p394)

우리가 그날 한 얘기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어요. 근데 말에요. 우리 둘 다 틀린 것 같아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재산은 '그것'이에요. (p395)

'테헤란의 지붕'은 팔레비 왕조의 압제 속에서 저항한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의 죄책감 그리고 무력감을 한 소년의 감정을 통해 전달하지만 후반부 장면들을 통해 희망을 전달하기도 한다. 오랜 방황 끝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소년의 성장을 통해 밝은 미래를 그리고 있으며, 지붕을 마주한 자리의 집에 거주하는 '가면의 천사'라는 여인에게서 자리의 환영을 쫓던 파샤가 그녀로부터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소중한 존재를 되찾게 된다. 개인적으론 '가면의 천사'가 사실은 누구였다는 식의 반전이 조금 뻔해 보여서 사족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나려는 파샤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필요한 장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랫만에 낯선 나라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의 모습에 웃고 울며 분노하였다. 팔레비 왕조 시절의 압제 속에서 죽음을 당하던 지식인들의 모습을 읽으며 그들의 비극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파샤가 겪은 상실감과 죄책감을 묘사한 장면을 읽을 땐 안타까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한편으론 닥터로부터 '그것'의 존재를 깨달은 파샤의 성장처럼 나도 '그것'을 깨닫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테헤란의 지붕'을 읽은 가장 큰 수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