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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브라더스] 전쟁이 만들어낸 두 형제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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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스 (Brothers)
짐 셰리던 감독, 2009년

배우들의 열연으로 빛을 발하는 영화

가족처럼 정겨우면서도 가족처럼 지긋지긋한 게 어디 있을까. 피로 연결된 친밀한 관계지만 그 친밀함이 때로는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 깊은 골을 새겨 넣기도 한다. 샘(토비 맥과이어)과 토미(제이크 질렌홀)가 바로 그런 형제다. 형 샘이 해병대 출신 아버지를 따라 훌륭한 군인이자 어엿한 가장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 때, 동생 토미는 교도소를 들락날락거리며 눈엣 가시마냥 온 가족의 외면을 받는다. 같은 핏줄을 이어받았음을 믿기 힘들 정도로 너무 다른 두 형제. 그러던 어느 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된 샘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두 형제의 운명은 비극적으로 엇갈리기 시작한다. 전쟁은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을 산산조각내고 가족까지 슬픔으로 몰고 가는가. <브라더스>는 조심스럽게 그에 대한 대답을 스크린에 펼쳐나간다.


아무래도 <엘라의 계곡>과 <굿바이 그레이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브라더스>는 9.11 테러 이후 전쟁을 소재로 등장한 일련의 작품들과 그 흐름을 같이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들은 크게 세 가지 경향으로 정리될 수 있다. <플라이트 93> <월드 트레이드 센터>처럼 9.11 테러 자체를 영화로 재현하며 미국 사회에 새겨진 상처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리댁티드> <허트 로커>처럼 참혹한 전장을 배경으로 반전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영화도 있다. 그 한편에는 <엘라의 계곡> <굿바이 그레이스>처럼 전쟁의 상처를 가족 드라마의 형식 속에서 풀어낸 영화들이 있다. <브라더스> 역시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전쟁이 의도치 않게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과정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족에서 나아가 미국 사회를 향한 반성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엘라의 계곡> <굿바이 그레이스>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브라더스>는 <엘라의 계곡> <굿바이 그레이스>에 비해 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감정의 울림을 만들어냈던 <엘라의 계곡> <굿바이 그레이스>와 달리, 2004년에 발표된 동명의 덴마크영화를 리메이크한 <브라더스>는 다소 기승전결이 부족한 스토리로 두 편의 영화만큼 큰 울림을 남기지는 못한다. 남편의 전사 소식으로 힘들어하는 샘의 아내 그레이스(나탈리 포트만)와 두 딸을 위해 토미가 샘의 빈자리를 채워가는 동안 스크린 가득 전해지는 행복은, 탈레반 포로로 붙잡혀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설욕을 당하는 샘의 피폐해진 얼굴에서 전해지는 참혹함과 교차되며 역설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샘이 그레이스와 토미의 사이를 의심하며 불붙기 시작하는 갈등으로 영화는 서스펜스를 자아내며 급속히 방향을 튼다. 그러나 <브라더스>는 전쟁이 두 형제의 마음에 새겨 넣은 갈등의 골이 표면으로 드러나기까지의 순간만을 보여준 채 급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토미의 내적인 갈등이 한 순간의 감정적인 폭발로 끝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브라더스>가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 것은 순전히 배우들의 힘이다. 특히 주연을 맡은 토비 맥과이어, 제이크 질렌홀, 나탈리 포트만이 펼치는 연기 호흡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다. 전쟁으로 피폐해져가는 샘을 통해 토비 맥과이어는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그림자를 벗어던지고 깊이 있는 내면 연기를 선보이고, 제이크 질렌홀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연상케 하는 문제아지만 미워할 수 없는 토미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탈리 포트만은 두 형제 사이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고 영화를 보다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또한 두 형제의 아버지로 등장해 퇴역 군인다운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샘 셰퍼드와 단 두 신 밖에 등장하지 않음에도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의 상처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캐리 멀리건 등 조연들의 연기도 빛을 발한다.

물론 <브라더스> 역시 <엘라의 계곡>과 <굿바이 그레이스>가 직면했던 문제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영화는 전쟁에 참여한 병사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그들의 가족에게 퍼져가는 과정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탈레반으로 상징되는 아프가니스탄인을 인간만도 못한 무자비한 인물들로 묘사하며 절대 악으로 상징 짓는 것도 <브라더스>가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못함을 드러내 보이는 한계이다. “죽음을 본 자만이 전쟁의 끝을 봤다고 한다. 나는 전쟁의 끝을 봤다. 그럼 나는 이제 다시 살 수 있을까?”라고 영화의 끝을 맺는 샘의 내레이션이 생각만큼 가슴 깊게 와 닿지 않는 것은 드라마가 부족한 스토리 탓이기도 하지만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영화의 고민이 부재한 탓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브라더스>는 짐 셰리던 감독의 연출력보다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더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될 것 같다. (★★★)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