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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책] 연애 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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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두 장 넘기던 책장을 순식간에 다 넘겼다. 길지 않은 책이지만 여운은 길다. 제목만 봐서는 한적한 시골의 안락의자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에 희끗한 머리를 날리며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게 웬걸, 연애 소설읽는 노인은 밀림이 우거진 아마존에 살고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만큼 억세다.

" 개발이라는 미명을 내세운 인간들에 의해 그 처녀성을 유린당하고 있는 아마존을 위한 서사시. "


옮긴이의 말로 간단히 요약되는 이 책은 분명한 선과 악의 구분 그리고 영화 「아바타」와 같은 단순한 테마와 플롯으로 쉽게쉽게 읽힌다. 이 책을 읽으며 '아바타'가 유독 많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외부에서 아마존으로 이주해 온 노인이 아마존의 원주민 수아르족에게서 살아가는 법과 대자연에 대해 배워가는 점이 제이크가 판도라의 나비족에게서 판도라 행성에 대해 배우고 대자연을 배워가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백인'이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자연을 훼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도 닮았다.

주제가 이렇게 뻔하니 책 내용도 뻔할 것 같지만 그것이 또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군데군데 섞여서 재미를 더한다. 단순히 플롯 전개에 필요한 이야기만 나열 된 것이 아닌 재미있는 읽을 거리도 제공한다는 말이다. 예를들어 원숭이와 앵무새를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상처 하나 입히지 않고 생포하는 방법이라던지, 수아르족이 나무늘보를 유독 사냥하는 이유라던지 하는 것들이다. 이 읽을 거리들이 정말 재밌다. 지식 보다는 지혜에 가까운 이런 이야기들이 매끄럽게 이야기를 이어지게 한다.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결이다. 긴장감이 감돌고 비가 쏟아 지다가 해가 떴다가 다시 비가 쏟아지는 날씨의 변화 속에서 인간과 동물의 대결 구도는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영감과 대어의 대결과 흡사해 보인다. 산티아고 영감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극복해 낸다는 의미가 강했다면 노인과 살쾡이의 대결은 생존 대결인 동시에 어쩔 수 없는 타인의 강요와 상황에 의한 대결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상대의 죽음에 승리의 기쁨 보다는 씁쓸함이 밀려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악역이라기엔 너무나 멍청한 읍장은 작가가 정부를 바라보는 관점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지식은 있지만 지혜가 없어 멍청하고 무능한 사람. 더불어 뚱보의 이미지. 이 뚱보의 이미지는 아마존이라는 환경과 겹치면서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을 떠올려 사냥을 다니고 자연과 호흡하며 살기 때문인지 원주민 하면 날렵하고 탄탄한 몸이 그려진다. 아마존 속의 뚱보는 이미 신체적으로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에 더하여 멍청한 언행으로 읍장은 최악의 이미지를 입는다. 그리고 읍장은 정부를 대변하는 관리다. 심지어 주민들은 읍장 '각하'라고 부른다. 멍청하고 못돼먹은 읍장 각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앞에 아마존이 훤히 그려지면서 읽히는 책이라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 전체가 아마존 우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보니 장마철에 읽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자연과 인간의 대결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방법을 생각해 보게 하고, '삶과 죽음이란 그 자체' 라는 수아르족의 말을 통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이 책 소장하고 싶다.


덧, 이 책은 동명의 이름으로 영화화 되었고 국내에선 개봉하지 않고 DVD는 발매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