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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1954)

'7인의 사무라이'는 전국 시대의 혼란으로 인해 무사들이 도적들로 전락하고 이로 인해 농민들이 수탈을 겪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다음 수확기 즈음에 언덕 너머의 마을을 공격하자는 도적떼들의 계획을 들은 농부들은 절망감에 빠진다. 영화는 엄숙한 배경음악을 통해 무력감과 불안감에 어쩔줄 모르는 농부들의 분위기를 전달하며, 원형으로 모인 농부들이 고개를 들지 못한 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행동을 통해 절망감을 드러낸다. 마을의 평화를 위해 도적들에게 곡식을 상납할 것인지, 아니면 죽기 살기로 저항할 것인지 대립한 가운데 마을의 촌장은 사무라이를 고용해 도적들을 막아내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번화가에서 사무라이를 찾던 농부들은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달라고 간청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보상과 명예없이 적들을 베는 일을 제의한 농부들의 청을 무시한다. 영화는 낮의 거리에서 사무라이들에게 모욕과 수모를 당하고 여관에 돌아온 농부들이 어두운 공간 안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을 대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그들의 무력감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농부들은 많은 사람들이 문에서 나와 한 사무라이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마치 중이라도 될듯이 스님에게 머리를 깎아달라고 칼을 내미는 사무라이의 모습, 그리고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개성있는 사무라이들의 등장을 통해 천천히 영화의 중심 인물들을 관객들에게 드러낸다.

중처럼 머리를 깎은 인물이 인질범에게서 아이를 구한 모습을 본 농부들은 자신들이 찾던 사무라이임을 깨닫고 그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한다. 시마다라는 사무라이는 전쟁에서 패배했던 자신의 과거를 언급하며 더 이상 피를 흘리고 싶어하지 않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신이 쌀밥을 먹는 동안 농부들은 피죽만 먹은 체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처지를 알게 된 시마다는 농부들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농부의 청을 들어주게 된 계기가 '쌀밥'이라는 특정한 물체라는 점이다. 인물이 내미는 어떤 상징적인 물체를 쇼트 중심에 배치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을 담아낸 쇼트는 '이키루'에서 모자를 내미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 모두 시무라 다카시가 중심인물이란 점도 특징이다.)

'7인의 사무라이'의 매력은 캐릭터 각각의 개성을 살림으로써 7명의 사무라이들을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인식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7명 중 리더 격인 시마다의 경우 침착한 모습을 통해 작전을 지시하는 카리스마를 보이지만 한편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묘한 웃음을 가진 여유로움을 보여 그에게서 인간적인 느낌을 받는다. 시마다 역을 맡은 시무라 다카시는 조연자 캐릭터나 '이키루'처럼 힘없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가 연상되는데, 이 작품에선 그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또한 그를 따라다니는 젊은 무사인 카츠시로의 순진하면서도 유약한 모습은 마치 부잣집 도련님같은 느낌을 주면서 그에 대한 동정심이 생기게 된다. 한편 카츠시로가 두려움과 존경이 동시에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는 인물인 사무라이, 전쟁 시절에 시마다를 따라다닌 사무라이, 적을 베기보다는 도망치는데 능숙하다는 사무라이 등 각각의 인물들은 특정 장면에서 빛을 발하면서 개성을 뿜어낸다.

7명의 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역시 미후네 도시로가 연기한 키쿠치요라는 인물이다. 비교적 자신이 고수임을 증명하듯 대부분의 사무라이들이 여유가 있으면서도 침착한 느낌이 배여 있는데 반해, 키쿠치요는 첫 등장부터 굉장히 거칠고 야수같은 느낌을 주면서 6명과 다른 대립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키쿠치요가 유난히 6명의 사무라이에게 자신의 강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미천한 신분 출신이기 때문이다. 키쿠치요는 자신의 족보를 들이대며 명망있는 사무라이임을 강조하지만 시마다를 통해 그것이 허울같은 족보임이 드러난다. 그들로부터 수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키쿠치요는 사무라이들을 따라다니며 자신을 한 편으로 받아주길 기대한다. 겉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속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길 원하는 아이같은 내면을 가진 키쿠치요의 모습은 자연히 관객들에게 그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요소가 된다.

특히 키쿠치요가 인상적인 점은 농민들을 거칠게 다루면서도 호감을 얻어내고 때론 농부들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그들을 도와준다는 점이다. 농부들이 패주한 사무라이들을 죽여 얻은 전리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사무라이들은 그들에 대한 배신감과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키쿠치요는 그들의 태도에 분노하며 농부들이 비록 겉과 속이 다른 영악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건 바로 너희 사무라이들 때문이라고 외치며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처럼 사무라이와 농민의 중간점에 서서 그들과 협력하는 키쿠치요의 존재는 자연히 그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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