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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悪い奴ほどよく眠る, 1960)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밑바닥', '생존의 기록' 그리고 '천국과 지옥'같은 작품을 보면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이야기의 중심 인물들을 동시에 등장시키고 관객들이 사건의 개요를 이해하도록 전개하는 점이 특징인데,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역시 앞에서 언급한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영화는 결혼식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기업과 공사 간의 입찰 비리를 긴박감있게 드러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관객들을 안내하는 장면이 진행된 후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쳐나오는 기자들의 행렬은 결혼식에 대단한 사건이 벌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이후 영화는 결혼식을 지켜보는 기자들의 대화를 통해 영화의 중심인물들을 소개하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후루야의 자살 사건을 언급한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건물 모양의 케이크의 등장을 통해 비리 사건의 핵심 인물 세 명의 심리 변화를 묘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라는 제목처럼 케이크를 본 비리 사건의 관계자 세 명이 점점 고위층으로 갈수록 동요의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시라이 과장의 경우 케이크를 본 순간 큰 충격을 받은 듯 칼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보이고 모리야마 부장은 동요어린 표정을 짓지만 최고위층인 이와부치 총재는 꿋꿋한 태도로 케이크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 대상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충격의 차이는 제목의 의미처럼 추악한 인간 일수록 뻔뻔한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결혼식 도중 벌어지는 잇다른 사건을 바라본 기자가 단막극이 아닌 이제 서막이라는 말처럼 영화는 토지공사의 입찰 비리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을 신문 기사를 펼치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입을 굳게 다문 사건 관계자들의 행동 때문에 난항에 처한다. 결국 검찰은 이들을 일시적으로 풀어주고 다른 혐의로 그들을 붙잡을 궁리를 한다. 하지만 거대한 암흑 세력은 사건 관계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린다. 잘 부탁한다는 상관의 명을 변호사를 통해 전달받은 직원이 차에 몸을 던지고 부장의 부하 직원인 와다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하려는 모습은 경제조직의 어두운 힘을 느끼게 한다. 와다가 몸을 던지려는 순간 영화는 한 남자를 등장시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이와부치의 비서이자 그의 사위인 니시가 나타나 와다의 행동을 비판한 것이다. 머뭇거리는 와다를 쓰려뜨리고 밀어버리려는 니시의 행동이 보여진 뒤 영화는 와다의 죽음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이와부치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