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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살아남은 자의 슬픔(범죄와의 전쟁, 2012)


2003년에 리메이크된 일본판 <하얀 거탑>을 감상할 수 없었던 것은 뛰어난 실력과 야심에도 끝내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하는 주인공의 패배담을 차마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는 법밖에는 모르는 모범생이 남아 있는 인간적인 선의 때문에 결국 몰락한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끔찍했다. 그래서 한국판 드라마가 남성 조직 사회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열광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관계의 법칙. 아홉 번 나쁘게 대하고 단 한 번 잘해주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반대로 아홉 번 잘해주고 단 한 번 못해주면 나쁜 놈으로 기억된다. 군대 이야기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한국에서 교사나 상사로 만나기 쉬운 이런 인간 군상에 대한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는 어처구니없다. 그 사람은 그냥 '나쁜 놈'이다. 나와 가족을 위해서 그랬다고 해도 그에게 연민을 가지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더 나은 시대를 살고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을 만큼 성실하게 살았던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거핀에 불거한 제목과 상관없이 1980년대의 부패한 사회를 관통하며(그렇게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인 현재의 한국 사회를 반추하는), 살아남은 승자의 '슬픔'에 공명하는(방점이 찍여야 하는 부분은 슬픔이 아니라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는 바로 그 사실인데) 이 잘 만들어진 블랙코미디가 그 완성도와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에 비례하여 보는 내내 너룰 몹시 불편하게 했다. 다만 수컷 냄새를 물씬 풍기는 하정우의 버림받은 맹수 같은 눈빛만은 정말로 강렬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