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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큐레이터매거진 창간준비호

[이 남자 모지?]죽음을 앞둔 남자_이영훈

 

여자 후배가 심각한 고민이 있다며 상담을 해달라고 청해 왔다. , 별로 상담해 주겠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다짜고짜 자신에게 있었던 내밀한 일을 털어 놓길래, 이미 시작한 이야기를 끊기도 뭐해서 잠자코 들었다.

고민의 내용은 이런 것.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나이 차이가 20살 이상이라는 것이다. 후배의 나이는 20대 후반. 대충 계산해도 상대방 남자는 50세 언저리일 것이다.

힘들지 않겠냐? 그렇죠, 힘든 거죠? 그렇지, 삐끗하면 너희 어머님이랑 동갑이잖아. 우리 엄마 그 남자보다 나이 많아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 정도 차이가 나면 뭐, 세대 차이 문제도 있고. 세대 차이는 서너 살만 차이 나도 느껴요, 선배하고는 뭐 세대 차이 없는 줄 아나. 아니, 세대 차이는 그렇다 쳐도, 건강 문제가 말이지. ‘그 분이 선배보다 건강할 걸요? 하루에 조깅을 두 시간 씩 하는데?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밖에 돌아다닐 때 조금 곤란하기도 할 거고. ‘그 분이 얼마나 잘생겼는데요, 선배하고 다니는 게 더 쪽팔리겠다.

……, 나한테 왜 이러냐?

 

대부분의 상담이란 답을 정한 사람이 그 답을 검증하는 과정이니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상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훌륭해. 어머니보다 나이도 적은 분이라니 딱이로군. 아름다운 로맨스를 즐겨라. 결혼할 땐 꼭 부르고.”라는 식으로 맞장구를 치고 얘기를 끝내려고 하는데 후배가 말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딱 하나 걸리는 게 있어요.

다른 건 다 괜찮고, 딱 하나 걸리는 있다면, 처음부터 그 이야기부터 하면 될 것을 대체 왜 다른 이야기를 한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후배의 표정이 너무 비장해서 그냥 걸리는 게 뭔데?” 하고 물었다. 한숨을 쉰 후, 후배가 대답했다.

그 분하고 잘 된다 해도, 그 분은 저보다 20년 이상 빨리 죽을 거 아니에요. 그게 걸려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것이 마음 속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마음 속의 일은 혼자만의 사정, 혼자서야 원빈을 사랑하든, 이병헌하고 바람을 피우든 아무 상관없다.

그런데 그 마음이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더 이상 혼자만의 사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각양각색의 이유들이 등장한다. 키가 작아서, 옷을 못 입어서, 너무 잘난 척을 해서, 너무 무식해서, 사랑하는데 잘 안되고, 잘 안되는데도 사랑한다.

물론 이런 자잘한 이유들 이전에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와 같은 매우 고전적인 사연이 있지만, 이것은 사실 선택의 문제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하지 않을 때보다 힘들면, 그 순간 그만 두면 된다. 그만 두는 것이 쉽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경우에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정말 괴로운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유들이다. 키가 작은 사람의 키를 늘여줄 순 없지 않은가. 옷을 못 입는 사람에게 옷을 사 줘 봐야, 그 사람은 사 준 옷들을 가장 이상한 형태로 섞어 입고 나온단 말이다. 사람이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이유들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런 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데, , , .’ 하지만 이것은 넓게 보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문제다.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인 것이다. 말했다시피, 이것은 선택의 문제다. 때문에 보다 결정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데, , , , , , .’

 

에베르하드 이삭 보르그에게 닥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영화의 초입에서부터 이 남자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다. 죽음을 앞 둔 남자에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이가 많은 사람을 사랑할 때, 사람들은 모종의 현명함을 기대하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마음의 상태가 더 나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철없고 멍청한 짓을 종종 벌이곤 하지만, 자랄수록 그런 면들은 점점 옅어지고, 누구나 다 차분하고 명석해진다고 말이다.

장담하겠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일정 이상 나이를 먹고 나면 다 똑같다. 성격이란 건 자리가 잡힌 순간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약간 더 완고해지거나, 약간 더 너그러워지거나, 조금 따뜻해지거나, 살짝 냉정해질 뿐, 정해진 위치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며느리의 입을 빌어 설명되는 이삭은 냉정하기 이기적인 사람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삭이 자신의 이러한 성격에 대해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죽음을 앞 둔 그 시간까지 이삭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거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고 믿는다. 우리는 늘 좀 더 친절해야 한다거나, 좀 더 현명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하지만 말이다, 이러면서도 우리는 절대로 자기 마음의 상태를 바꾸지 않는다. 성격의 어떤 부분에 대해 쉴 새 없이 후회하지만, 정말로 그 상태를 바꾸는 사람은 없다. 친구에게 아주 약간 상냥하게 대하거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는 정도로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성격을 바꾸었다면 두 번 다시 같은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마음에 대해 그저 생각만 할 뿐이다.

더 끔찍한 것은, 많은 수의 남자들이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하더라도 절대


로 깊이 하지 않고, 깊이 하더라도 바꿀 마음은 먹지 않고, 바꿀 마음을 먹더라도 절대로 못 바꾼다. 이삭은 남자들의 이런 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칠십년 이상을 살았지만 자기의 성격이 어땠는지 깨닫지도 못했다.

죽음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새삼스럽게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이삭이 처음으로 가 닿는 곳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다. 수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이삭은 자신의 삶이 가장 찬란하다고 믿었던 시기와, 그 믿음이 깨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부정을 저지른 자신의 아내에 대한 환상을 목격하기도 하지만, 그 목격 끝에 이삭에게 남는 것은 죄책감과 후회뿐이다. 심지어 이삭은 부인과 관련된 그 어떤 행복한 기억도 떠올리지 못한다. 평생을 산 끝에 남는 것이

죄의식뿐이라니, 비참하지 않은가?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반추가 가능한 것은 이삭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

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 때문에 아주 약간이라도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로다.

나이 차이가 스무살이든, 서른살이든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결코 자신의 성격을 후회하지 않

는다. 죽음을 앞 둔 순간이나마 자신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삭은 여타의 남자들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후배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같은 또래의 남자들보다 20년 정도 먼저,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있지 않은가. 죽음을 앞 둔 남자를 사랑한다면 적어도 단 몇 시간이나마 그 사람이 진실로 바뀌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부분에서 위안을 얻으라고 말할 용기는 내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