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heater

[프리뷰] ‘퓨어’, 레퀴엠이 흐르는 순수의 위태로움


현실은 잔혹하다. 무엇하나 내 맘대로 되는 건 없고, 피하고 싶은 어려움들은 산적해 있다.


스무 살 카타리나(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변변한 옷 한 벌이 없다. 의지할 누군가도 없다. 엄마는 알코올 중독자이고 남자친구는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남이다.


목구멍은 포도청인데 카타리나는 도무지 현실엔 관심이 없다. 하는 일이라곤 매일 빈둥거리면 음악을 듣는 게 전부다. 취향은 어찌나 고상한지 스눕 독과 켈리 클락슨은 우습기만 하다. 어느 날 유튜브를 통해 듣게 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이 세상 음악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카타리나에겐 모차르트만이 유일한 삶의 낙이다. TV와 팝을 듣는 하찮은 남자친구와 술에 취한 엄마에게 벗어날 유일한 도피처였으니까. 카타리나는 결심한다.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테보리 콘서트홀로 달려간다. 운 좋게도 콘서트홀 안내 일을 구하게 되고, 인생은 꿈꾸던 것들로 채워져 갔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이상형도 만났다. 매력적인 마에스트로 아담(사무엘 프뢸러)과 아슬아슬하지만 뜨거운 사랑을 나누게 됐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라는 생각할 여유도 없이 쏟아지는 행복을 집어 삼키느라 정신이 없다. 새로 산 옷에 얼룩이 묻은 걸 알아채지 못한 채.


영화의 시작부터 흐르기 시작한 레퀴엠은 끝나지 않는다.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 카타리나의 발자취를 쫓는 위태로움에 압도되는 순간, 영화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퓨어’는 스웨덴 천재 여성감독 리자 랑세트의 장편 데뷔작이다. 2010년 제 15회 부산영화제에서 ‘순수소녀’라는 제목으로 상영돼 비아시아권 신인 감독의 경쟁부문인 ‘플래시 포워드’상을 수상했다. 상영시간 102분. 6월20일 개봉.


by 모모큐레이터 4기 염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