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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페루에서 최고신붓감의 조건은 감자껍질을 얇고 길게 깎는 것? <밀크 오브 소로우-슬픈 모유>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통해 본 페루 인디오들의 삶의 지혜

<밀크 오브 소로우-슬픈 모유>에 그려진

결혼식과 장례식을 통해 본 페루 인디오들의 삶의 지혜

 

- 감자껍질을 얇고 길게 깎아야 최고 신붓감?

 

 

5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틸다 스윈튼 심사위원장(<설국열차>,<케빈에 대하여>)을 비롯한 심사위원 만장일치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82회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는 놀라운 페루 영화 <밀크 오브 소로우-슬픈 모유>.  이 영화는 우리에겐 낯선 나라인 페루, 그 안에서도 매우 신비로운 근원에 속하는 안데스 산지의 잉카 원주민들의 언어와 문화를 담아내고 있어, 우리에게 더욱 신선하고 순수한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안데스 산지의 사람들에게 축제와 의식, 노래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억압된 기억을 보존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 영화에서 제시되는 인생의 중요한 축제 두 가지는 바로 결혼식과 장례식이라는 만남과 헤어짐의 의식들이다.

 

동서고금의 영화가 사랑한 인생의 양대 축제,

결혼식과 장례식

 

떠들썩하면서도 신비감이 가득한 결혼식 장면들로 유명한 에밀 쿠스투리차 감독의 영화 <집시의 시간> <언더그라운드> 등의 음악을 맡았던 음악감독 고란 브레고비치 1995년 조직한 그룹의 이름은 웨딩 앤 퓨너럴 밴드이다. 그 이름이 보여주듯이, 결혼식과 장례식은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과 슬픈 순간을 상징한다. 또 결혼식과 장례식에 동원되는 악단이 그 동네에서 가장 연주를 잘하는 악단이었다는 설명이다. 결혼식과 장례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사랑 받아온 영화의 소재이기도 하다.

 

 

결혼식이란 몇 시간 동안의 쇼가 아닌, 인생의 중요한 축제이다. 어떤 이에게 결혼은 인생을 바꿔 줄 신데렐라의 구두이기도 하며(<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귀여운 여인>), 어떤 이에겐 결혼은 사회적 공인을 얻고자 하는 눈속임이기도 하다(<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가 주목하는 가장 대표적인 결혼의 의미는 사랑의 결실로서의 행복한 대단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뮤지컬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은 <맘마미아>의 경우가 그 대표적. 비록 결혼식의 주인공은 딸에서 엄마로 바뀌게 되지만, 결혼식이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하는 대표적인 영화라고 할 것이다.

 

 

 

결혼식에 한 가족, 나아가 한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영화도 있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같은 예가 그렇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상대와 결혼을 하려고 할 때, 결속이 강한 가족일수록 그 혼란과 충격은 더욱 크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신랑신부 두 사람만의 이벤트가 아닌, 가족 모두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둘러싼 준비과정은 한 민족의 구세대와 신세대를 아우르는 문화 유산이 집약되어있는 절차로서 인류학적 가치마저 높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으로 돌아보는

페루 인디오들의 삶의 지혜

 

<밀크 오브 소로우-슬픈 모유>에서 처녀가 얼마나 준비된 신붓감인지를 알기 위한 시험과정은, 감자의 껍질을 얼마나 얇게, 끊어지지 않게 깎느냐 하는 것이다. 소박한 전통적 가치가 살아있는 결혼식의 모습이다. 결혼식의 메시지는 딸을 결혼시키는 아버지의 축사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깜짝 놀랄 선물을 숨기고 있다”. 과자부스러기 이외에는 모든 게 가짜인 장식용 뷔페, 신부 이름조차 잘못 적힌 웨딩케익, 가짜 폭포그림 앞에서의 기념촬영이라 해도, 그 안에 모인 신랑신부와 하객들에겐 그 날의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일년 동안 절약해 온 소중한 날, 살아있음을 축복하는 날이다. 

 

 

    

 

한편, 이 영화에서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펼쳐 놓은 침대 아래에는 염을 마친 파우스타 엄마의 시신이 놓여있다. 의식과 축제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죽음은 한 순간에 벌어지는 이별이 아니라, 어머니가 노래를 멈추는 모습으로, 서서히 빠지는 머리카락으로, 시신에 오일을 바르고, 마치 웨딩드레스를 입히듯 염을 하고, 파우스타가 엄마의 시신을 업고 사막을 지나 바다를 보여주게 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 전체를 따라가며 단계적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 전체가 하나의 긴 장례의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치유와 이별, 파우스타의 새로운 인생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의 괴팍한 성격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져 파괴된 피아노가 불에 태워지는 장면또 다른 장례식의 은유가 된다. 권력자에 횡포에 의해 폭력적으로 죽임을 당한 피아노의 모습은 역사에 희생된 불쌍한 민중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죽어서도 노래하며 또한 아름다운 파편을 남기는 피아노의 모습은 파우스타의 엄마의 모습과 겹쳐진다. 파우스타에겐 고통스러운 역사의 흔적으로 몸에 묻혀 있던 감자의 이미지 또한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진다. 흙에 묻힘으로써 꽃을 피우는 감자의 은유를 통해, 죽음은 곧 새로운 생명으로 끊김 없이 이어진다는 희망의 알레고리를 전달하고 있다.

 

                   

 

삶과 죽음을 잇는 축제로서의 장례를 이야기한 또 다른 작품의 예로 이청준 원작,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들 수 있다. 전통적 장례의식을 충실하고 세밀하게 복원해낸 이 영화에서 장례식은 죽음을 애도하는 절차라기 보다는 삶의 일부이자 마지막 단계, 삶의 완성으로서의 죽음을 성대한 축제로 치러내는 과정이다. 사는 내내 고통으로 인해 한을 쌓아온 인간이 그 한과 슬픔의 고리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으로서의 죽음은 죽은 자에게도 축제다. 영화에 흐르는 동화적 상상력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기쁨과 슬픔을 뒤섞는다. 할머니의 신산한 삶은 한 편의 동화가 되어 남는다.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삶을 위로하고 행복을 향해 나아갈 힘을 주는 축제의 좋은 기운이 가득한 영화, 페루에서 날아온 신비한 치유의 노래 <밀크 오브 소로우-슬픈 모유>는 상처와 아픔을 안은 모든 가슴에게 권할 만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