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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Giant,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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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구입한 '자이언트' dvd를 뒤늦게 감상했다. 사실 '자이언트'는 제임스 딘의 마지막 작품이란 것만 알고 있어서 단순히 삼각관계를 다룬 로맨스 영화인줄 알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200 여분에 달하는 대서사시라는 점과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인종차별과 천민 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의 장면들이 인상적이어서 보는 내내 졸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는 양면 디스크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석유로 온 몸을 뒤덮은 제트 링크가 베네딕트 가(家)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장면까지를 앞면에 담아내고 있으며 그 이후를 뒷면에 수록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두 편을 나눈 기준이 영화의 내용에 맞게 잘 분배되었다는 점이다. 전편이 빅과 레슬리 부부의 결혼 생활의 갈등을 통해 20세기 초의 여성 차별과 텍사스 내의 인종차별을 그리고 있다면, 후편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결혼생활의 갈등보다는 아버지와 자식간의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흔들리는 가부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제트 링크의 모습을 통해 석유로 일으킨 미국 자본주의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명마를 구입하기 위해 메릴랜드의 한 집안을 방문한 빅 베네딕트는 우연히 그 집안의 딸인 레슬리 린든을 만나게 되고, 말을 사러 온 빅은 레슬리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짧은 만남이 인연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텍사스의 베네딕트 가(家)에 도착할 때만해도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지만 텍사스 주에 도착하면서 두 사람의 다른 지역 배경과 성격은 차츰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텍사스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찼던 레슬리는 메릴랜드와 너무 다른 텍사스의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모습이라든지 동부인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날씨나 음식은 그녀를 당황하게 한다. 그러나 레슬리에게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다름아닌 텍사스 인 남성들의 태도이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정치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남자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여성들은 주변에서 바느질을 하면서 거리를 둔 체 있는 모습은 텍사스 남성들의 우월적인 지위를 연상케 한다.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레슬리가 이야기에 참여를 하려고 하자 골치 썩은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나면서 그녀를 회유하려는 모습은 한편으로 여성이 정치 이야기에 끼어드는 모습을 못마땅해 하는 남자들의 모습인 것이다. 또한 빅의 누나가 낙마 사고로 숨진 후 목장의 경영에 참여하려는 레슬리를 제지하고 자신의 농장을 반드시 맏아들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빅의 모습은 남성 우월적 사고를 가진 꽉꽉 막힌 가부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되는 빅의 태도는 결함이 많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갖춘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성격 차로 인해 레슬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가로 떠나 별거 생활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빌면서 레슬리와 재회하는 빅의 모습에서 로맨틱한 느낌이 든다.

한편 레슬리는 텍사스에서 남성 우월적인 모습을 보고 분개하지만 멕시코 인들을 동등하게 대해주지 않는 텍사스 백인들의 모습에도 의아해 한다. 텍사스에 처음 발을 내딛을 때 멕시코 하인들에게 친절하게 답변을 하는 레슬리의 모습을 보고 빅은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그녀에게 충고한다. 우연히 차를 타다 멕시코 인들이 따로 사는 난민촌의 모습을 본 레슬리는 몸이 아파 움직일 수 없는 부인 대신 안겔이라는 아이를 달래 주고 의사를 데려와 멕시코 인들을 돕는다. 하지만 빅을 비롯한 텍사스 인들은 멕시코 하인들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레슬리와는 달리 멕시코 인들을 마치 동물처럼 바라본다. 심지어 멕시코 인들로부터 땅을 반강제로 획득했다고 목장주들을 비난하는 제트 링크 마저 '왜 멕시코인들은 독립하지 못하는가'라고 묻는 레슬리의 질문에 '난 그들과 다른 사람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멕시코인과는 다른 존재라고 인식한다. 재미있는 것은 베네틱드 가(家)에 모인 사람들이 우량 종자를 개량함으로써 태어난 검은 소나 검은 색과 흰 색이 뒤섞인 말을 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 장면에서 빅이 구입하려는 명마가 검은 말이라는 점도 이런 속성을 뒷받침하지 않나 생각한다.) 가난하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멕시코인들을 동물 보듯이 하는 텍사스 인들의 모습은 미국 백인 사회의 인종차별주의가 연상된다.

빅과 레슬리 베네딕트가 서로의 성격 차를 극복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면 제트 링크는 마치 '태양은 가득히'의 톰 리플리처럼 가난한 무산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제트 링크는 레슬리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한 빅 베네딕트를 증오한다. 처음부터 삐딱한 시선으로 빅을 바라보는 제트의 모습에서 빅을 증오하는 태도가 드러나지만 무일푼인 그는 빅에게 신세를 지는 비참한 신세이다. 거구의 풍채를 가진 빅이 위에서 제트를 바라보는데 반해 다소 마르고 왜소한 제트가 아래에서 빅을 바라보는 모습은 이들의 처지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빅의 누이 덕분에 간신히 일을 얻어 빅의 노동자로 일하던 제트는 그에게 친절하게 대한 빅의 누이의 유언 덕분에 유산을 물려 받게 됨으로써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 자신의 땅을 주기 싫었던 빅은 그에게 시가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트에게 제시하지만, 빅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찼던 제트는 빅의 제안을 거절하고 땅을 소유하게 된다. 울타리를 쳐 자신만의 지역을 만든 제트는 우연히 들른 레슬리가 밟은 발자국에서 검은 액체를 발견한다. 석유를 직감한 제트는 거대한 빚을 지면서 송추탑을 만들어 고군분투 한다. 술을 벗삼아 혼자서 송추탑을 만들면서 초초해하던 제트는 송추탑에서 석유가 뿜어 나오자 '쇼생크 탈출'의 앤디 듀프레인처럼 손을 뻗으며 검은 액체를 받아들인다. 온몸에 석유를 뒤덮은 제트는 그동안 자신을 괄시하던 베네딕트 가(家)에 찾아가 그동안 겪은 설움을 토해내지만 한편으론 레슬리에 대한 흑심을 드러낸다. 레슬리에게 말조차 건네지 못했던 수줍은 남성이었던 제트는 그녀에게 추태를 부리게 되고, 이에 분노한 빅은 제트를 때리지만 오히려 기고만장한 제트에게 얻어맞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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