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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디렉션 홈 : 밥 딜런 (No Direction Home : Bob Dylan,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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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2007)를 보고 나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2005)도 계속해서 보고 싶었으나 쉽게 구해지지가 않더군요.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이 작품이 국내에 DVD로 발매가 되어서 최근까지 불과 6천원 가량에 할인 판매가 되었다가 지금은 절판되고 말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마존에서 주문을 할까 여러번 망설였습니다만 한글 자막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쉽게 내키지가 않았더군요.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시던 지인께서 드디어 DVD를 빌려주셨는데 지역코드가 1번인 영어판이었습니다. 덕분에 아쉬운 대로 영어 자막을 보면서 이틀에 걸쳐 감상했습니다. 200분이 넘는 분량이긴 하지만 왜 국내 극장가에서는 소리 소문도 없었는지 직접 보니 알겠더군요.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은 극장 상영용은 아니고 TV 방영이나 DVD 감상을 위해 제작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도 <아임 낫 데어>와 같습니다. 밥 딜런이 60년대 초반 저항과 자유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포크 가수로서 우뚝 서게 된 과정과 이후 록앤롤 밴드로 전향을 하면서 부딪혀야 했던 대중들의 반감, 그리고 매체들로부터 시달리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아마도 토드 헤인즈 감독이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을 본 이후에 <아임 낫 데어>를 구상했던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두 작품은 무척 가깝게 보입니다.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이 Raw Data를 1차 가공한 기초 자료로서 역할을 한다면 <아임 낫 데어>는 특정한 메시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해체와 재창조의 과정을 거친 픽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임 낫 데어>를 통해 관심을 갖게 된 밥 딜런이라는 인물과 그의 음악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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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밥 딜런의 음악 스타일과 창법은 당시에도 약간 독특한 것이었더군요. 당시에도 대중적인 팝 음악들은 훨씬 부드럽고 감미로운 편이었는데 밥 딜런은 그런 대중적인 취향으로부터 한참 멀리 떨어져있는 스타일의 음악이었습니다. <아임 낫 데어>에서도 묘사가 되고 있듯이 밥 딜런의 음악은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포크 음악 스타일을 계승했다고 보여지는데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주류의 음악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멜로디 보다 가사를 중요시하는 포크 음악이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크게 부각이 되면서 밥 딜런은 일약 "미국인들의 맥박에 손가락을 얹어놓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죠. 시인이자 작곡가, 연주자로서의 재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조안 바에즈의 표현에 따르면 "대단한 기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발휘할 줄도 알았던 밥 딜런은 이런 시대의 흐름 위에 망설임 없이 적극적으로 올라탔던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밥 딜런이 원했던 것은 가수로서 유명해져서 자신의 음악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르는 것이었지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정치적인 소임을 다 하는 것은 아니었던 거죠. 조안 바에즈가 계속 시위 현장에 남아있길 바랬던 것과 달리 밥 딜런은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하고 싶어 했다는군요. 밥 딜런이 한 사람의 음악인을 넘어선 시대적 아이콘으로서의 역할을 거부하고 전격적으로 록앤롤 사운드를 받아들인 계기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밥 딜런의 원곡을 리메이크해서 재미를 본 뮤지션들이 많았다는 것인데요 역시 밥 딜런은 '뮤지션들의 뮤지션'이라 할 만한 부분이기도 하면서 이런 점이 밥 딜런 자신도 좀 더 대중적인 취향의 음악을 하고 싶어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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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 록앤롤 밴드와 함께 연주하기 시작한 밥 딜런을 배척했던 것은 포크 음악의 순수성을 중요시 하던, 그리고 밥 딜런은 저항 음악인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팬들 뿐만 아니라 동료 음악인들도 그 옆에 있었다는 사실이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을 통해 새롭게 알 수 있었던 부분입니다. 함께 동고동락해왔던 포크 뮤지션들 입장에서는 밥 딜런의 전향이 한마디로 배신자, 가롯 유다에 가까운 것이었겠죠. 여기에는 일렉트릭 악기를 사용하는 록 음악에 대한 당시의 보수적인 편견이 상당 부분 작용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모든 주변의 만류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지위를 마다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간 밥 딜런도 참 대단한 인물이긴 합니다만 결국 유럽 투어 이후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면서 몇 년 간 연주 활동을 하지 않았고 기독교에 귀의하기도 했던 과정을 보면 나름대로 자신이 지나온 과정에서 받았던 정신적 스트레스가 꽤 컸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은 <아임 낫 데어>에서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했던 유럽 순회공연 부분까지만 담고 이후의 일은 자막으로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임 낫 데어>에서는 밥 딜런이 기독교에 귀의해 가스펠을 부르는 모습까지 다뤄주면서 인간적인 연민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하죠. <아임 낫 데어>는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의 확장판인 동시에 밥 딜런의 입장(또는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개인들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핵심 메시지를 부각시키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데이빗 보위를 모델로 했던 토드 헤인즈 감독의 또 다른 작품 <벨벳 골드마인>(1998)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게 된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고 유명해지고자 하는 것은 젊은 시절에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욕망이라 하겠습니다만 밥 딜런이 겪어온 과정을 보면 역시나 유명세에는 그 만큼의 구속과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 시절의 밥 딜런이야 오죽했을라고요. 죽어서 전설이 되는 뮤지션들도 많습니다만 밥 딜런과 같이 오래토록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개인들의 모습이 더 값지게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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