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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안녕? 허대짜수짜님!] 노동자의, 노동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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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허대짜수짜님!
정호중 감독, 2008년

선동에서 벗어나 대중적으로 이야기를 건네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믿음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노동자 계급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켄 로치 감독의 작품들이나, 관타나모 수용소의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마이클 윈터버텀 감독의 <관타나모로 가는 길>이 그렇다. 지난 20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첫 극영화 <안녕? 허대짜수짜님!>도 영화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믿음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차이점이 있다면,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노동자 스스로가 만든 ‘진짜’ 노동자영화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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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노동자영화라고 하면 선동적일 거라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머리에 띠를 동여매고 팔뚝질을 하며 파업과 데모를 하는 모습이 뉴스와 신문이 만들어낸 노동자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80년대에 주로 발표됐던 노동소설에도 분명히 선동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만큼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보는 이를 선동하려고하기 보다는 오히려 대중적인 태도로 관객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대중적으로 노동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영화가 노동자의 이야기를 가족을 통해 풀어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영화의 기본갈등은 주인공 허대수(엄경환)가 하나뿐인 딸 연희(박서빈)와 같은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세희(윤혁중)의 결혼을 반대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허대수는 딸의 결혼을 반대하기 위해 고민 끝에 자신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한다. 딸을 끔찍이도 사랑해서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이야기다. 노동자의 이야기가 가족의 이야기로 들어오는 순간, 영화는 ‘노동자’의 이야기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아버지’의 이야기로 변한다. 영화의 이러한 태도는 노동자도 알고 보면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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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결혼을 반대하기 위해 거짓으로 아프다고 핑계를 대던 허대수는 진짜 병에 걸려 당황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난 허대수는, 그 친구가 자신과 같은 병으로 회사에서 잘려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됐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굉장히 투박한 신이지만, 이를 통해 영화는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정규직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 보인다.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먹이지 않아도 노동자들이 직면해있는 문제점들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안녕? 허대짜수짜님!>의 또 다른 미덕이다.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이야기를 가족을 통해 풀어내는 과정에서 보이는 가족주의에 대한 옹호는 또 다른 비판의 지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 곳곳에 드러나는 아마추어적인 부분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주연 배우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는 어쩐지 대본을 그냥 읽고 있다는 느낌이고, 촬영이나 편집에 있어서도 미숙한 면이 많이 보인다. 짜임새가 부족한 이야기는 TV 드라마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제도권 밖에서 만들어진 영화에 제도권의 잣대를 들이대 비판을 하는 게 가능하긴 한 건지 의문이 든다. 이 영화의 미흡한 부분들은 오히려 영화를 만든 이들의 열정의 표현임과 동시에, 영화의 진정성을 높이는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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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함께 힘을 모아 투쟁하고, 결국 회사는 비정규직을 자르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허대수도 딸의 결혼을 승낙해서 손자를 보게 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애니메이션이 전해주는 따뜻함처럼, 노동자들의 삶도 따뜻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노동자가 만든 노동자의 영화지만, 우리 모두를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