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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샤인 어 라이트] 단돈 7천원으로 만나는 전설적인 록 밴드의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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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어 라이트 (Shine A Light)
마틴 스콜세지 감독, 2008년

여전히 젊고 섹시한 롤링 스톤즈

얼마 전 TV에서 본 광고가 생각난다. 정년퇴직을 한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이 록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하는 장면이 담긴 광고였다. 광고의 목적이 결국엔 소비자의 이뤄질 수 없는 욕망을 자극하여 소비를 이끌어내는 것에 있음을 생각하면, 나이가 들어서 록 밴드를 한다는 것도 어쩌면 우리에겐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불가능을 현실에서 가능케 한 밴드가 있다. 바로 롤링 스톤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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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어 라이트>는 무엇보다도 롤링 스톤즈와 마틴 스콜세지의 만남만으로도 흥분하게 만든 영화였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음악과 영화 양쪽에서 각자 거장이 된 감독과 밴드의 만남이 어떤 결과물을 낳았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미 그동안 연출해온 극영화를 통해 롤링 스톤즈의 팬임을 자처했던 마틴 스콜세지는 <샤인 어 라이트>를 다큐멘터리가 아닌 라이브 실황으로 완성시켰다. 이미 살아있는 전설인 롤링 스톤즈의 공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 전설을 직접 체험케 하는 것이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온몸을 비틀며 무대를 뛰어다니는 믹 재거, 그 어떤 기타리스트보다도 ‘간지’나게 기타를 연주하는 키스 리처드, 그 옆에서 보이지 않는 매력을 뿜어내는 로니 우드, 그리고 그들 뒤에서 조용히 드럼을 연주하며 밴드를 받치고 있는 찰리 왓츠. 이 네 명의 ‘구르는 돌’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들의 젊음에 끝은 있는 건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얼굴에 가득 드리운 주름살도 그들의 젊음을 막지 못하는 듯, 그들은 그 어떤 젊은 밴드보다도 더 정열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또한 그들의 음악 역시 가장 원초적인 록 음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펙트를 사용하지 않은, 까랑까랑한 기타 사운드는 믹 재거의 폭발하는 보컬과 함께 보는 이의 가슴 속을 파고들어 어떤 해방감을 경험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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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들은 여전히 섹시하다. 담배를 꼬나물고 온갖 폼을 잡으며 기타를 치는 키스 리처드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댄스를 선보이는 믹 재거를 누가 환갑을 넘긴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관객석 앞의 어느 여성에게 “당신 예쁘군”이라고 말을 거는 모습이나, 무려 40여년의 나이차이가 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함께 보여주는 화끈하기 그지없는 무대는 이들에게 나이란 한낱 숫자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이들이 섹시한 건 비단 그들이 ‘롤링 스톤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그들 사회의 분위기의 탓도 분명 있을 것이다.

<샤인 어 라이트>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부러웠던 것은 한 노장밴드의 음악을 세대를 넘나들며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세대 간의 벽이 낮음을 보여주는 부분들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세대와 함께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이면서도 가장 뜻 깊은 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이에 따른 세대 구별이 심한 우리나라로서는 그런 것이 쉽지가 않다. 어른들 스스로가 만든 세대 간의 벽은 어른들이 먼저 무너뜨리지 않으면 허물어지지 않는 법이다. 롤링 스톤즈가,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가 여전히 거장 소리를 들으며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그런 벽을 허물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젊은 세대의 가장 화끈한 밴드인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잭 화이트가 이들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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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아쉬움은 이토록 신나는 영화를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자꾸 발이 움직이고 박수를 칠 뻔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특히 보는 것만으로도 숨막히는 ‘Sympathy for the Devil’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Brown Sugar’와 ‘(I Can't Get No) Satisfaction’은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 최고의 무대였다. 내한공연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롤링 스톤즈의 라이브를 그나마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이 멋진 공연을 선사해준 롤링 스톤즈에게 박수를, 또한 공연의 열기를 그대로 영화에 담아낸 마틴 스콜세지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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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스 리처드가 ‘You Got the Silver’를 부를 때 옷에 달린 <캐리비안의 해적> 배지가 살짝 스쳐지나간다. 안 그래도 영화 속 키스 리처드는 자꾸 잭 스패로우를 떠올리게 하는데 옷에 달린 배지를 보니 어쩐지 반가웠다. (조니 뎁이 키스 리처드에서 잭 스패로우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키스 리처드는 <캐리비안의 해적: 세계의 끝>에서 잭 스패로우의 아버지로 등장하기도 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 옷은 <캐리비안의 해적: 세계의 끝> 출연을 기념하여 받은 선물이라고. 아마도 영화를 보면 왜 조니 뎁이 잭 스패로우를 연기하기 위해 키스 리처드를 참고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 미국에선 아이맥스로 개봉했다. 한국에서는 아이맥스로 보지 못하는 건가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