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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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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발표된 이사카 고타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나카타 히데오 감독이 연출한 <검은 물 밑에서>(2002)와 <라스트 씬>(2003) 의 각본을 썼던 인물이더군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스릴러나 정통 미스테리 극은 아닙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추적해간다는 느낌 보다는 그러잖아도 의심스러웠던 사건의 진상을 뜸들이지 않고 평이하게 설명해주는 식입니다. 대학 입학을 위해 혼자 센다이에 이사를 온 시나(하마다 가쿠)의 입장에서 수수께끼 같은 만남과 사건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영화 중반에 진실이 밝혀지면서 2년 전에 있었던 실제 사건들을 한꺼번에 회상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릴러나 미스테리물에서 기대할 법한 장르적인 재미는 별로 없는 편이지만 아마도 원작에서 이미 제시되었을 줄거리와 메시지의 전달에 집중하며 잔잔한 정서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특이하게 지어진 긴 제목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에는 집오리와 들오리 뿐만 아니라 '코인로커 안의 신(神)'까지 등장합니다. 등장 인물들은 밥 딜런의 노래를 신의 목소리라 불렀고, 코인로커 안에 밥 딜런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를 반복 재생하는 CD 플레이어가 하나 남게 됩니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간단히 요약하자면 밥 딜런의 노래가 센다이 기차역의 코인로커 안에서 들리게 된 사연과 그 의미에 관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코인로커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밥 딜런의 노래가 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시각적 이미지와의 싱크로율이 그리 높지가 않지만 밥 딜런의 노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그 의도 만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라 할까요. 집오리와 들오리로 상징되는 외국인과 토종 일본인들 간의 문제도 건드리고 애완동물 학대와 같은 잔혹 범죄도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만 영화는 현실적인 사회 문제의 원인을 깊이 들여다 보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등장 인물들이 서로 맺어지게 된 개인적인 사연에 좀 더 집중하는 편입니다. 문학 작품이 원작이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두드러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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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시각과 정서는 대학 신입생인 시다의 3인칭 시점으로 다뤄지지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실질적인 중심 인물은 '옆 집에 사는 미스테리한 인물' 도르지(에이타)입니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도르지의 정체와 그가 2년 전에 경험했던 일들이 곧 내용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TV 시리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펑크 스타일의 라면집 아들로 출연했던 에이타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 등에서의 주목받는 조역에 이어 드디어 영화 한 편 전체를 이끌어가는 배역을 맡았는데요, 아사노 타다노부나 오다기리 죠와 같은 존재감이 부족한 편이지만 간지 넘치는 외모와 성실한 연기로 관객들의 집중력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는 편입니다. 더불어 <고하토>(1999)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던 마츠다 류헤이가 가와사키라는 인물로 출연하여 오랜만에 독특한 매력을 선보입니다. 확실한 오락적 재미에 충실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중한 주제 의식을 확실하게 파고드는 것도 아니어서 다소 어중간한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 덕분에 크게 지루한 줄은 모르고 감상할 수 있을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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