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덴 형제의 '프로메제'는 벨기에 내에서 벌어지는 불법 체류자 문제와 인종 차별을 다루고 있다. 불법 이민자들과 인종차별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미지의 코드'나 '히든'을 연상시키지만,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가 인간의 이중성을 고발하면서 인물들의 본모습을 드러내는데 중점을 두는데 반해 다르덴 형제는 클로즈업 쇼트로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내어 한 인간의 내면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마치 구스 반 산트의 '파라노이드 파크'처럼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고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소년의 감정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이입시킨다.
영화는 한 소년의 일상을 통해 불법 체류자들에게서 돈을 갈취하는 악랄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고르란 소년은 차를 수리하는 수리점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다. 용접을 배우기 위해 수리점의 직원에게 설명을 듣던 중 초조하게 눌러대는 클렉션 소리를 듣자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박차고 한 남자의 차에 탑승한다. 차를 타고 이동한 이고르는 자신의 아버지인 로제와 함께 으슥한 장소에서 차량에 숨긴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이후 영화는 불법 이민자들이 사는 공동 주택의 집을 돌아다니면서 집세와 수고비를 받아내는 로제와 이고르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거민들이 불법 체류자라는 점을 악용해서 높은 수고비를 받아내고 방 안에 숨긴 사람을 악착같이 찾아내면서 집세를 받아내는 로제의 모습은 험상궂은 외모만큼 악랄하다. 이고르는 수리소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기술을 익히려 하지만 아버지인 로제의 일을 도와주면서 견습조차 못하게 된다. 소년의 유일한 취미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이지만 로제는 아들에게 자신의 일을 강제로 부담한다. 로제가 볼법 이민자들을 협박하면서 돈을 갈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고르도 방을 돌아다니며 이민자들로부터 돈을 징수해가지만 가스통을 살 돈이 없어 외상을 부탁하는 아미두에게 가스통을 제공하는 순수한 면도 보여준다.
하지만 어느 날 로제의 집에 찾아온 경찰들의 불체자 검문으로 인해 끔찍한 비극이 발생한다. 지붕에서 일하던 아미두가 경찰들을 피하기 위해 사다리를 내려가다 그만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다리를 크게 다친 체 죽어가는 아미두를 찾아간 이고르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죽어가는 아미두를 바라보던 이고르는 약속해달라는 그의 부탁에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떡인다. 이고르는 아미두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지혈을 하지만 경찰들이 두려운 로제는 시체를 숨기기 위해 아미두의 몸 위에 문짝을 올려놓는다. 갑자기 찾아온 아미두의 아내인 아시타를 간신히 돌려보낸 로제는 아미두를 맨 땅에 매장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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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로제는 자신의 아들을 시켜 난방을 고치는 척하면서 로제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도록 요구한다. 이고르는 아시타의 집을 드나들면서 그녀와 친해지지만 그녀에게 진실을 고백하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아미두가 자신에게 부탁한 약속을 지켜야 된다는 부담감은 소년을 괴롭게 만든다. 영화는 몇 일째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믿으면서 기다리는 아시타를 초조하게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죄책감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로제는 자신의 죄를 회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아시타를 쫓아내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부하를 시켜 아시타를 강간하도록 한 다음 자신이 아시타를 도와주면서 슬그머니 아시타의 친척이 사는 이탈리아로 갈 것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남편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아시타는 로제의 제안을 거절한다. 결국 로제는 가짜 전보를 만들어 아시타로 하여금 독일 쾰른으로 떠나도록 유도한다. 남편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받은 아시타는 쾰른까지 공짜로 태워주겠다는 로제의 호의를 받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속셈을 알아차린 이고르는 갈등하기 시작한다. 아시타를 차에 태운 후 승합차의 짐을 덜어내기 위해 아버지를 도우던 소년은 아버지가 물건을 옮긴 사이에 문을 닫고 서둘러 집을 빠져 나간다.
로제를 피해 최대한 멀리 떨어진 이고르는 차를 타고 자신이 일하던 정비소를 향해 들어간다. 정비소를 향해 이동하는 동안 아시타는 몇 명의 백인들에게 모욕을 당한다. 잠시 다리 밑에 있던 아시타는 다리 위에서 자신을 향해 오줌을 싸는 백인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폭주족 두 명은 오토바이로 그녀의 짐들을 잔인하게 밟아버린다. '이 나라의 백인들은 모두 나쁜 놈들이야.'라고 소리치는 아시타의 대사는 백인들에게 모욕당한 흑인의 처절한 분노가 느껴진다. 정비소에 아시타를 데려온 이고르는 아버지가 그녀를 죽일 거라고 말하면서 그녀에게 친척이 있는 이탈리아로 갈 것을 설득한다. 하지만 남편의 생존을 굳게 믿고 있는 아시타는 남편을 찾기 위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상을 알고 있는 소년은 화를 내면서 당신을 괜히 여기로 데려왔다고 소리치면서 애써 자리를 벗어나려 하지만 끝내 눈물을 흘리며 아시타를 포옹한다. 아시타를 붙잡은 체 마치 어머니에게 잘못을 숨기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이고르의 모습은 소년의 죄책감을 극대화시킨다.
이후 영화는 불법이민자들에게 냉소적인 벨기에 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시타의 아이가 열이 나자 아시타는 거리를 나와 차를 세우기 위해 '호스피탈'을 애타게 외치지만 차들은 그녀의 외침을 외면한다. 이고르가 그녀를 보고 자신이 차로 태워주겠다고 말하지만 아시타는 주변의 물건을 던지면서 '너도 네 아버지처럼 나쁜 인간이야'라고 울부짖는다. 천신만고 끝에 이고르는 아시타와 아이를 병원에 데려오지만 보험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높은 가격의 치료비를 지불하도록 요구한다. 소년은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치료비를 납부하지만 일부 금액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 이렇게 곤경에 처한 아시타를 도와준 사람은 다름아닌 병원에서 청소부를 하는 한 흑인 여인이었다. 병원에서 만난 여인의 도움으로 아시타가 이탈리아로 출국할 수 있자 이고르는 반지를 팔아 그녀에게 돈을 준다. 작별인사 후 아시타가 기차를 타려는 순간 이고르는 그녀의 등 뒤에서 자신이 숨기고 있던 진실을 고백한다. 아미두의 죽음을 알게 된 아시타는 터빈을 푼 체 아무말 없이 복도를 향해 걸어나간다. 힘없이 걸어가는 아시타와 그녀를 말리기 위해 걸어가는 이고르를 고정된 쇼트로 보여준 후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는 열린 결말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되지만 진실을 고백하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일기장에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쓴 후 일기장을 태워 죄의식에서 가까스로 해방된 '파라노이드 파크'의 주인공처럼 '프로메제'의 이고르도 피해자에게 진실을 고백함으로써 어느 정도 죄책감에서 해방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비록 용서의 몫은 아시타에게 달렸지만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사라지는 아시타의 모습은 용서의 어려움을 함축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런 음악 없이 소음만 들려오는 황량한 음향과 멀리 사라져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마지막 장면은 삭막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을 안겨주면서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