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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맛집

분당 커피해피 (Coffee Happy)

몇 년 전 에스프레소 머신을 처음 구입했을 때에는 커피빈에서 파는 8온스(170g 정도)짜리 원두를 사다가 먹었습니다. 종류에 따라 1만2천원 ~ 1만5천원 정도 했죠. 중간에 마트에서 7, 8천원짜리도 먹어봤는데 그건 정말 별로더군요. 그러다 작년 3월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원두를 주문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종류도 다양하고 500g을 한꺼번에 구입하면 택배비까지 지불하더라도 커피빈에서 사는 것 보다 저렴했습니다. 가장 좋은 점은 주문을 받은 시점에 로스팅을 해서 보내주니까 적어도 처음 받았을 때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신선한 커피향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처음으로 주문해서 받았던 커피는 콜롬비아 에스메랄다 수프리모였는데 가장 저렴한 가격대의 커피였는데도 포장을 막 열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시 집에서 로스팅부터 직접 해보는 걸 생각해보기도 했었는데 그건 역시 무리다 싶어서 자제하고 있습니다 ^^)

커피 해피는 제가 에스프레소 좋아하는 걸 아는 분이 신문 기사를 보고 알려준 사이트였는데 처음 주문한 이후로 다른데는 더 알아보지도 않고 1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아주 만족스럽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생두로도 주문할 수 있고 로스팅된 원두는 100g, 200g, 500g, 1kg 단위로 주문할 수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커피 해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드디어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했기 때문이죠. 웹사이트를 통해 커피전문점 창업 관련 컨설팅과 기자재 판매, 재료 도매도 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오프라인 매장이 대단히 훌륭한 '다방'이기도 해서 꼭 한번 가볼만 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원두가 떨어지기 직전에 새 원두를 주문해줘야 하는데 그간 먹던 원두가 토요일에 딱 떨어졌어요. 그래서 일요일 점심을 먹고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위치는 분당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태재고개 직전에 요한성당이 있는데 그 뒷편 골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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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서 꽤 유명한 가게다 보니 나이 좀 있으신 분들께 물으니 금방 알아들으시고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시더군요. 그러나 어린 친구들은 아직 잘 모르는 곳인 듯 했습니다. 유럽의 어느 지방에서 옮겨온 듯한 인테리어 컨셉이더군요. 계절이 좋아서 화단의 꽃들이 만발해 있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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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보다 실내가 훨씬 더 유럽풍입니다. 물론 유럽의 실제 커피 가게들이 다 이런 건 아니고 조그마한 에스프레소 가게가 많은데 커피해피는 오히려 유럽 가게들 보다 더 유럽스럽게 차려놓았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가까운 일본에는 이런 풍의 커피점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국내는 잘 모르겠네요. 샤갈의 그림을 모사한 벽화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꼼꼼히 둘러본 건 아닙니다만 온갖 커피 기자재가 진열되어 있고 바로 구입도 가능합니다. 일주일에 두 세 차례 커피 교실도 열고 있다는군요. 사진 오른쪽에 계신 분이 사장님입니다. 초상권 때문에 뒷모습만 담았습니다만 인상 끝내주게 좋으십니다. ㅎㅎ 사장님 서계신 오른쪽에 로스팅룸이 있는데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서도 구경할 수 있게 해놓으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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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진공관 앰프와 LP 턴테이블을 구경했습니다. LP 판이 자꾸 튀는 바람에 나중에는 CD로 음악을 바꿔 들었습니다. 음질의 차이는 잘 모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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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매장에서 파는 커피는 핸드드립으로 만드시는 것 같더군요. 이런데 언제 또 와보나 싶어서 가격이 좀 센 걸로 마셔봤네요. 스페셜티커피 가중에 비교적 저렴한 콜롬비아 신추아리오 - 티피카를 마셨습니다. 집에서는 생우유를 섞어서 카페라떼를 만들어 먹는데 여기선 우유를 아예 안주시더군요. 설탕도 섞지 않고 먼저 향과 맛을 봤는데, 뭐 이 정도면 우유가 필요 없구나 싶었습니다. 리필을 요청하면 계속 주십니다만 이날 다른 일정도 있었고 커피라는게 섭취량에 한계가 있다보니. ^^;




원두를 사가려면 계산하고 나갈 때가 아니라 처음 도착해서 마실 커피를 주문할 때 미리 해두면 기다리지 않고 계산할 때 받아갈 수 있습니다. 매장 안에 거대한 로스팅 기계로 볶아주시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요. 당연한 거 같은데도 계산하고 나가시다가 갑자기 원두커피를 사겠다고 사셔서 기다리는 시간 때문에 못사가시는 분들이 더러 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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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커머셜 커피만 주문해서 먹다가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방문한 김에 한 단계 올려서 프리미엄 커피 중에 이디오피아 산을 500g 구입했습니다. 원두커피로 사용되는 커피 생두는 아라비카종(인스턴트에 사용되는 종자와 달리 카페인이 적으면서 맛과 향은 더 강한)인데요, 이디오피아가 원산지라고 하더군요. 유기농 커피인 이디오피아 모카 이가체프를 권해주시는데 갑자기 레벨업을 하면 다시는 그 아래로 못내려올 것 같아 제누인 이가체프로 구입했습니다.

원두커피를 처음 구입해서 먹을 때에는 원산지에 대한 지식이나 입맛도 저렴하다 보니 무조건 진하게 로스팅된 커피를 골랐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좋은 재료를 가볍게 로스팅한 쪽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크 로스팅은 탄맛이 많이 나니까 생두의 품질 자체를 구별하기 힘들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질 낮은 생두의 품질을 로스팅으로 커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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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먹었던 원두에 비해 알의 크기가 훨씬 작더군요. 로스팅도 굉장히 마일드하게 되어서 엷은 갈색입니다. 커피해피에서 로스팅해주신 실제 이디오피아 모카 제누인 이가체프 원두의 색감은 위의 사진 보다 좀 더 탁한 갈색입니다. 보통 저가의 원두라면 사진으로 봤을 때 거의 검은색에 가깝게 표면이 반들반들하기까지 하죠. 원두의 향이 참 묘한데요, 낯익은 커피 탄내가 아니라 생두의 비린내가 살짝 섞인 향입니다. 만들어진 에스프레소도 맛이 엷은 편이라 평소 보다 설탕과 우유를 적게 써줘야 하고요. 로스팅으로 인한 탄내가 곧 커피향이었던 단계에서 벗어나니 약간 적응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중에 저가의 원두로 다시 내려오려고 하면 그때는 또 지나친 탄내가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싶네요. 커피해피 사장님 말씀으로는 "대부분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스페셜티 커피로 한번 올라가면 다시는 그 아래로 못내려옵니다"라시더군요. 스페셜티 커피가 아닌데도 이렇게 평소 먹던 원두와 차이가 많으니 감히 이 위로 올라갈 엄두가 안나는군요.

500g을 한꺼번에 구입하니까 200g 가격의 두배 보다도 싸고, 직접 방문을 해서 구입하니 배송료가 빠지면서 평소에 먹던 커머셜 커피 값 보다 2천 밖에 차이가 나질 않더군요. 매장에서 마신 커피값이 있어서 좀 싸게 해주신 것 같기도 하요. 다음엔 전화로 미리 주문해놓고 픽업을 해오는 것도 한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학생 때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를 읽으면서 이게 뭔 소린가 했었는데 말이죠. 아무튼 커피 좋아라 하시고 분당에서 그리 멀지 않으신 분들은 한번 찾아볼만한 '스페셜티 플레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커피해피 말고도 다른 좋은 곳도 많이 있을테고요. 저는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과는 클래스가 다른 진짜 커피의 세계를 커피해피 매장에서 살짝 보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