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태양'은 모스크바의 성에 달려있는 붉은 별을 고정된 프레임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후 카메라는 줌아웃되면서 열을 맞춰 행진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암울한 모스크바의 시대 분위기를 암시한다. 이후 영화는 말끔한 옷차림을 한 남자를 등장시키는데 다소 초조해보이는 표정의 남자는 서서히 총알을 하나씩 꺼낸 후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눈다. 총알이 나가지 않아 극적으로 살아남은 남자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초반의 충격적인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일으키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저 남자는 누구인가. 왜 저렇게까지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고 할까 하고 말이다.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던 남자의 등장 이후 영화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나이 든 장교와 젊은 아내, 그리고 어여쁜 여자 아이를 등장시킨다. 스탈린의 집권을 기념하는 비행선이 한참 제작중인 시골 마을에서 오랫만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던 세르게이 코토브는 시골 마을의 밀밭을 향해 돌진하는 탱크들을 막아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을 듣고 말을 타고 현장에 등장한다. 런닝 차림의 장군을 본 병사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더니 세르게이가 모자를 쓰는 순간 그가 스탈린과 절친한 코토브 장군이란 것을 알고 황망히 그곳을 빠져 나온다. 밀밭을 향해 돌진하려는 탱크들을 자신의 등장만으로 막아낸 세르게이의 모습을 통해 그의 화려한 명성과 강력한 권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밀밭의 민원을 처리한 후 세르게이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사는 저택으로 들어가 대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며 평화롭게 휴가를 맞이한다.
하지만 세르게이의 딸인 나디아 앞에 한 남자가 찾아오면서 영화는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에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남자가 지난 10여 년동안 사라진 체 소식이 없던 드미트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가족의 일원들은 모두 기뻐하며 그를 맞이하지만 세르게이와 그의 아내인 마루샤는 드미트리의 등장에 당황한다. 드미트리가 물을 원하자 거실에 들어간 마루샤가 수돗물을 튼 체 밸브를 잠구지 않는 모습과 그녀의 손목 사이에 난 커다란 칼자국을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로 보여주면서 마루샤의 초조한 감정을 드러내며 드미트리와의 묘한 관계를 짐작케 한다. 평화로운 한나절을 보내면서 가족들은 즐겁게 야유회를 맞이하지만 드미트리와 마루샤의 모습과 이들을 경계하는 세르게이의 모습은 여자아이인 나디아의 입장에서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디아는 호기심에 삼촌이라 부르는 드미트리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지만 마루샤는 딸을 나무라며 드미트리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 한다. 아버지와 딸이 보트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드미트리는 마루샤를 한 외딴 수풀로 유도한다. 드미트리는 자신과 마루샤와의 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자신은 10여 년동안 이 곳에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떠나야 했던 아픔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세르게이는 대범한 척하며 두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도록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마루샤와 드미트리가 화생방 훈련의 혼란 속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달려간다. 방독면을 쓴 체 피아노를 치는 드미트리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는 세르게이의 모습은 두 사람을 의심하는 묘한 경계심이 엿보인다.
마루샤와 드미트리 그리고 세르게이와의 묘한 관계는 드미트리가 아이인 나디아에게 들려주는 동화를 통해 드러난다. 드미트리가 들려주는 동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디아는 호기심에 빠진 체 이야기를 경청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마루샤는 점점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드미트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름아닌 세 명의 남녀에게 있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한 장군의 협박으로 집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그가 한 때 사랑했던 연인은 그 장군과 결혼해 있었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통해 드미트리는 자신과 세르게이 사이의 악연을 드러내면서 명망있는 장군인 세르게이의 숨겨진 위선적인 속내를 드러낸다. (한편 드미트리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둥근 태양의 모습을 한 불꽃이 등장하면서 세르게이의 집을 돌아다닌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꽃처럼 돌아다니는 붉은 태양은 나무를 향해 떨어지며 강렬하게 나무를 태워버린다. 마치 가족의 불운을 예고하듯이 말이다.) 마루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정신적인 혼란을 겪으며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한다. 간신히 그녀를 말린 세르게이는 마루샤와 사랑을 나누면서 그녀와 화해를 하고 드미트리는 이야기를 고백한 후 피아노를 강렬하게 치면서 자신의 분노를 애써 억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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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연인을 빼앗긴 남자의 복수극처럼 느껴지던 영화는 드미트리와 세르게이의 대화를 통해 놀라운 진실을 드러낸다. 마치 장난의 일환처럼 나디아의 귀를 막은 드미트리는 세르게이에게 자신이 찾아온 진정한 목적을 그에게 설명한다. 이후 세르게이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며 행동하지만 축구 시합 도중 우연히 축구공이 밖으로 빠지자 드미트리와 세르게이는 이 틈을 이용해 그들 사이에 숨겨진 사실들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세르게이는 자신을 데리려 왔다는 드미트리에게 화를 내며 그의 숨겨진 본질을 폭로한다. 탐욕에 눈 먼 장군에게 자신의 연인을 빼앗기고 그 댓가로 자신의 삶이 희생된 줄로만 알았던 드미트리는 세르게이에게 고용되어 소련의 장군들을 고발하는데 앞장 서온 스파이였던 것이다. '우린 널 돈을 주고 사왔지. 싸구려 창녀도 너보다는 낫다'고 비난하는 세르게이의 말은 드미트리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드미트리는 명망있는 장군들을 고발해왔으며, 이제는 세르게이를 소환하기 위해 10여 년만에 그를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가족의 평화를 위해 연극을 한다. 세르게이는 명망있는 자신을 소환하려는 정부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지만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 드미트리와 장단을 맞추며 마치 일상적인 모습처럼 행동한다. 세르게이는 마치 이탈리아 영화인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처럼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드러내지 않고 마치 중요한 일로 떠나는 것처럼 가족을 속인다. 아무것도 모르던 소녀 나디아는 드미트리가 자신을 데리러 차가 올거라는 말을 듣자 기쁜 마음에 자신이 차를 몰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드미트리의 허락을 받은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른체 대문에 매달려 차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이윽고 차가 도착하자 나디아를 비롯한 세르게이의 가족들은 차량에 탄 코트입은 남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다. 세르게이는 자신을 소환하러 온 차가 오자 모든 것을 체념한 체 쓸쓸히 자신이 스탈린과 찍은 사진들을 바라보며 신변을 정리한다. 딸인 나디아가 찾아와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지만 세르게이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차를 운전하는 소원을 이룬 나디아를 돌려보낸 후 차량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내며 세르게이를 경계한다. 장군의 총을 빼앗고 그의 소지품을 빼면서 긴장감이 멤돌던 차가 밀밭을 지나가는 순간 영화 중간 마다 마을의 이름을 몰라 길을 헤메던 어리숙한 남자의 트럭이 등장한다. 남자가 차량 속의 경찰에게 길을 묻자 세르게이는 친절하게 말을 걸면서 그에게 제대로 된 마을의 이름을 알려준다.. 하지만 남자의 등장은 끔찍한 사태를 불러 일으킨다. 세르게이가 비밀경찰의 제지에 저항하자 그들은 장군을 향해 주먹세례를 날린다. 장군을 알아보던 남자는 명망있는 인물이 힘없이 얻어 맞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충격에 빠진 체 어쩔줄을 몰라하며 그 곳을 서둘러 빠져나가려 한다. 하지만 드미트리가 마치 병사들을 다루는 것처럼 구호를 소리치자 어리숙한 남자는 슬그머니 나타나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이 때 스탈린을 위한 비행선이 지평선에 떠오르면서 영화는 지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진정한 태양인 스탈린의 초상화를 비춘다. 태양을 가리면서 등장하는 스탈린의 거대한 초상화를 바라보면서 담배 피는 것도 잊은 체 손을 떨며 그에게 경례하는 드미트리의 모습은 스탈린의 절대권력의 무서움을 짐작케 하며 그 역시도 스탈린의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비밀경찰들은 길을 물어보던 남자를 살해하고 차에 탑승한다. 수갑을 찬 체 피투성이가 된 세르게이가 그들을 바라보며 공포의 눈물을 쏟아내고 검은 차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화로운 밀밭 사이를 지나간다.
이후 영화는 모스크바에서 자살시도를 했던 드미트리의 모습을 다시 보여준다. 서서히 드러나는 드미트리의 마지막 모습은 무기력한 남자의 절망이 담겨져 있다. 손목을 그은 체 힘없이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붉은 별을 바라보며 죽어가는 드미트리의 마지막 모습은 복수를 갚았다는 통쾌함보다는 허무한 감정이 가득하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던 붉은 불꽃은 드미트리가 바라보는 별을 향해 고정된다. 결국 세르게이와 드미트리는 붉은 별에 고정된 불꽃에게 불타버리고 만 것이다. 드미트리의 비참한 최후를 보여준 후 영화는 즐겁게 뛰어가는 나디아의 마지막 모습을 비추며 마무리된다. 이후 등장하는 자막은 이 영화가 실화임을 드러내면서 반동분자로 몰려 죽음을 당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된 세르게이의 가족들의 안타까운 최후를 보여준다.
ps.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 영화의 제목은 소련에서 30년대에 유행하던 곡인 Утомлённое солнце (Utomlyonnoye solntse, Weary Sun) 에서 유래되었는데, 폴란드 작곡가인 예르지 페테르스부르스키 (Jerzy Petersburski)가 만든 폴란드 탱고 음악인 Ta ostatnia niedziela 를 번안했다고 한다.
Jerzy Petersburski - Ta ostatnia niedziela
Eduard Artemyev - Utomlyonnye solntsem OST
ps2. 영화의 감독인 니키타 미할코프가 직접 세르게이 장군을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처음 봤을 때는 이 사람이 감독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또한 나디아를 연기한 여자아이는 감독의 친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