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 로스무스(Anja Rosmus)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더 걸'은 필징 시에서 자라온 소냐의 이야기를 통해 금기시 되었던 숨겨진 진실을 찾으려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학생 시절 '2차 대전 시절의 내 고향'이라는 에세이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자료를 조사하던 소냐는 우연히 1936년 즈음에 발간된 지역신문의 기사를 발견한다. 기사에 언급된 인물들의 이름을 찾기 위해 소냐는 당시 사건과 관련된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인터뷰를 하려고 하지만 당시 기사를 쓴 편집장이자 교수인 유케낙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당시 있었던 사건을 함구하며, 도서관에서는 소냐가 찾는 자료의 대출을 거부한다. 관계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부족한 자료로 인해 소냐는 자신의 에세이를 쓰는데 실패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제를 계속하고 싶어한다. 소냐는 결혼 생활 이후에도 계속해서 연구를 계속하게 되고 그녀의 끈질긴 노력 끝에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냐가 마을에서 존경받는 유케낙 교수의 숨겨진 친나치 경력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그녀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집단적인 따돌림과 린치를 당하게 된다.
거대조직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홀로 싸우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영화인 점에서 '에린 브로코비치'나 '베로니카 게린' 등의 영화들을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이 영화적 플롯에 맞춰 정통적인 드라마적 구성을 취한다면 '더 걸'은 인터뷰 기법과 연극무대를 통한 희극적 구성이라는 독특한 영화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리포터가 도시를 소개하는 듯이 영화의 주인공인 소냐가 마을의 명물들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마치 소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마이크를 스크린에 드러내 소냐를 포함한 주변인물들을 인터뷰 함으로써 소냐에 대한 인물들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면 소냐의 외삼촌의 인터뷰를 통해 필징 시를 상대로 소송을 건 소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드러내며 그녀의 남편의 인터뷰를 통해 가정 살림에 소홀한 체 필징 시를 상대로 홀로 싸우는 소냐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또한 영화는 연극무대 같은 배경과 무대세트 장면을 드러내면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뒷배경을 공간의 사진으로 표현하고 인물들의 행동을 그 가상의 공간에서 보여줌으로써 연극 무대같은 공간을 마치 건물 속 공간처럼 인식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연극적 구성을 통해 영화는 사건을 바라보는 소냐의 심정을 희극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자료의 열람을 요구하는 소송 장면에서 판사의 뒤에 있는 동상을 분장한 사람이 잠을 자는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웃음을 이끌어내며 공평하지 못한 법정의 행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한 재판장에서 소냐를 바라보는 방청객들의 모습을 보여준 후 소냐가 나무더미 위에 묶혀 화형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심정을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필징 시의 모습은 비단 당시 서독 사회의 모습만이 아닌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성에 대한 호기심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임신한 임산부 교사를 해고하고 접은 화폐가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다는 이유로 화폐의 폐지를 주장하는 가톨릭의 비합리적인 모습과 기부금의 액수에 따라 점수의 평가가 달라지고 시험문제를 알 수 있는 썩어빠진 교육 실태, 그리고 진실을 드러내려는 소냐를 옹호하는 남자를 향해 '공산주의자는 동독으로 꺼져라'라고 소리치는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 등은 생소하지 않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소냐의 끈질긴 노력 끝에 몇몇 인물들의 친나치 경력을 기록한 책이 발간되고 그녀가 수많은 대학으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자 마을 사람들은 소냐에 대한 적대감을 거두고 오히려 그녀를 환대한다. 예를 들어 진실을 파헤친다는 이유로 소냐의 가족에게 약을 팔기를 거부하던 약사는 이제 그녀의 책을 자신의 가게 앞에 두고 있다. 소냐를 협박하고 따돌렸던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녀를 마을의 자랑으로 표현하며 소냐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그녀의 얼굴을 본뜬 동상을 제작한다. 필징 시의 사람들은 이처럼 소냐를 찬양하는 대신 소냐에게 행하던 비난과 따돌림을 친나치 경력이 있는 유케낙 교수로 돌린다. 그리고 그들은 유케낙이 맡던 편집장을 갈아치우는 것으로 드러난 진실을 마무리한다. 소냐가 주변의 협박과 따돌림을 이겨내고 진실을 드러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진실에 대해 참회하고 반성하지 않고 단순히 당사자만 갈아치운 체 그 진실은 외면해 버린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존경하던 교수의 친나치 경력이 외부에 드러나자 서둘러 그를 영웅의 자리에서 몰아내고 대신 자신들이 따돌림하던 인물을 우상화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필징의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을 진실이 아닌 마을의 자랑인 영웅이 필요할 뿐이다.
소냐는 자신의 흉상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대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경악해 한다. 플래쉬 세례 속에서 멈추어진 쇼트 속에서 드러난 소냐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다. 소냐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 행사는 자신의 입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화를 내면서 자리를 떠나려 한다. 그녀가 그토록 사람들을 두려워하면서 자리를 떠나야 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자신을 괴롭히던 마을 사람들의 뒤바뀐 갑작스런 환대가 그녀로서는 두려웠을 것이다. 주변 환경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의 비열한 본성은 마치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을 보는 듯하다. 도그빌이나 만덜레이에서 인물들의 비열한 본성을 발견한 그레이스가 경악한 것처럼 소냐도 자신의 환영식 속의 인물들 속에서 그러한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마을 사람들을 피해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기적의 나무로 달려가 그 곳에 매달리는 소냐의 마지막 모습은 아무리 용감한 자가 진실을 드러내도 그 진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는 헛된 노력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