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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자유로운 세계: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자유로운 세계'의 암울함


자유로운 세계
감독 켄 로치 (2007 / 독일, 영국, 이탈리아)
출연 키얼스턴 워레잉, 줄리엣 엘리스, 레슬로 쥬렉, 브랑코 토모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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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의 신작인 '자유로운 세계'를 필름포럼에서 감상했다. 사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볼 때 켄 로치 감독의 전작인 '빵과 장미'처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한 여성에 관한 영화인 줄 알았는데, 그 반대에 가까운 영화였다. 제목인 '자유로운 세계'는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세계가 아닌 바로 사용자들의 자유로운 세계였던 것이다. 영화는 선진국의 3D 업종도 마다하지 않고 일자리를 얻으려는 외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는 것처럼 유도하면서 그들의 노동력을 갈취하고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가차없이 잘라내는 신자유주의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노동자들과 피지배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켄 로치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영화는 비정규직이었던 한 여성이 사업주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적인 가치가 인간을 변화시키는 악순환을 보여준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부의 지시라는 한마디로 직장을 잃은 싱글맘인 엔지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그녀의 친구인 로즈와 함께 인력파견 회사를 세운다. 엔지는 직접 오토바이를 몰며 사업장을 돌아다니면서 수요자들을 물색한다. 발로 뛰면서 돌아다닌 엔지의 노력 덕분에 수요자들을 얻게 되자 그녀는 영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외국인들과 교섭하면서 공급원들을 찾아낸다. 하지만 점점 수익을 고려하던 엔지는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하고도 처벌받지 않고 경고로 끝난 판결문을 읽고 나서 점점 법적인 가치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여권을 위조해 외국인들의 불법취업을 장려하고 좀 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재울 수 있는 저렴한 숙박장소들을 찾아다니며 보다 많은 인력들을 끌어모으는 그녀의 모습은 점점 탐욕스런 고용주처럼 변해가기 시작한다.

엔지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명령하며 일용직을 제공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녀의 아버지는 엔지를 못마땅해 한다. 엔지의 아버지가 엔지의 사업에 대해 충고하자 그녀는 굶어가는 그들에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최저임금만도 못한 임금을 받아가며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주는 기회는 결과적으로 그들이 아닌 고용주들에게만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엔지는 시대가 변했다고 말하면서 한 직업을 갖고 근면하게 일하던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엔지의 아버지는 너와 제이미만 잘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고 항변한다. 결국 엔지의 발언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피고용자의 입장에서 성추행과 실직의 아픔을 겪었던 그녀는 이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해고했던 고용주들과 비슷한 행동을 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