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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바시르와 왈츠를 (Vals Im Bashir, 2008)



어느 이스라엘 영화 감독의 80년대 레바논 전쟁 경험담입니다. 애니메이션이긴 하지만 '전장에서 피어난 한떨기 꽃과 같은'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작품도 아니고 내용상 판타지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 감독 자신과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전우들의 실제 체험과 인터뷰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라고 해야 할 작품이더군요. 어떤 장면들은 몇몇 인물들의 인터뷰를 촬영한 뒤에 음성 녹음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만든 듯 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인터뷰이들이 회상하는 당시의 상황을 묘사할 때, 특히 초현실적인 장면들을 묘사할 때 드러나곤 합니다. 배경음악의 사용이 꽤 인상적인 편인데 26마리의 개가 등장하는 도입부(친구의 악몽)부터 시작해서 당시의 유행 음악과 귀에 익은 클래식 선율들이 전쟁의 아이러니를 묘사하곤 합니다. 이런 세련된 표현 방식이 자칫 작품의 진정성을 해칠까 우려했던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당시에 실제 촬영된 이미지로 채워넣습니다. 전쟁의 참상과 비극성을 알리고자 했던 그 의도를 왜곡없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영화는 아리 폴먼 감독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그들의 현재 보다는 82년 레바논 전쟁 당시에 이스라엘 군인들로서 겪어야 했던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전쟁의 무자비함을 강조합니다. 그들이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채 살고 있는 이유는 무의식적인 방어 기재 때문인 것으로 설명됩니다. 때로는 자신이 보고 있는 끔찍한 장면들을 영화 속 장면인 것으로 인식하며 견디다가 그 상황이 끝나고 나면 메모리에서 삭제를 해버린다고 하는군요. 돌이켜보면 저도 유난히 길고 험난했던 군에서의 훈련 기간을 '이것은 역할 게임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며 견뎌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식의 방어 또는 회피 기재를 가동시키는데 실패했던 누군가는 자신을 괴롭히던 훈육관에게 대들다가 퇴소를 당하기도 했지요. 그런 일이 어디 군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만 어쨌든 82년의 전쟁과 특히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 캠프에서 자행되었던 대학살은 아무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만큼, 실제로 아리 풀먼 감독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기억에서 지워버린 채 살아야 했을 만큼 비참한 사건이고 야만의 결과였다는 거죠.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반전의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고 그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다소 지루한 인터뷰 장면과 사실적인 묘사에 충실하고 있는 독특한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합니다.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쟁의 참상과 야만성이 어디 중동 지역 뿐이겠습니까만 전쟁에는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말을 이처럼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은 몇 안되는 것 같습니다. 바시르는 당시 레바논 왕조의 후계자로 즉위한 바로 다음날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암살된 인물이고 '대학살'은 그 일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행해진 보복 행위였더군요. 어떻게 이스라엘 군인이 '바시르와 왈츠를' 추게 되었는지는 작품 속에 나옵니다. 중동 분쟁은 언제 봐도 참 복잡합니다. <바시르와 왈츠를>을 통해 짤막한 부분이나마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